정동초등학교에서는 일요일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는 월요일에 상영되는 섹션5와 6을 소개합니다.
데일리팀도 관객으로서 도란도란 작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은 내용은 최대한 언급 자제하고, 일부 표현만 00(자체 모자이크!)로 남겨두었습니다. (숨긴 단어가 몇 글자든 상관 없이 몽땅 00으로 표시하여 꽁꽁 감추었습니다.)
📽️🌰💺❄️섹션5: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메밀묵><경계><눈길>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

서예인 | 극 | 2025 | 35분 37초 | 컬러
요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거의 매년 상영되는 것 같은데, 그중 이 영화의 재미는! 갑자기 배우가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 나는 ‘죽은 척’에서 시작되는 자기탐색의 코미디를 상상했는데, 어느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버디 무비!
범 둘 다 불안 바깥에 존재하기 어려운 직업군이기도 하고, 둘 사이의 관계도 협력자처럼 느껴지지만 때로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되기도 하니까. 나는 둘의 이야기가 나란히 나오는 게 재밌었어. 어쩌면 한 명은 죽음으로, 다른 한 명은 잠수로 도망친 사람들이고.
요 감독은 자기가 써야만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고, 다 쓰더라도 제작지원 등 경제적 여건이 충족되어야만 찍을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보여주는 건 또 그냥 보여줄 수 있나? 배우도 마찬가지야. 선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가 많은 직업이고 말야. 둘 다 노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취향과 운 같은 요소들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해. 말하다 보니… 나는 ‘죽은 척’이라는 게 재밌어서 그 상황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도 좋을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다분히 은유기도 하구나!
범 나는 ‘척’에 방점을 두고 봤던 거 같아. 사실은 진짜 죽고 싶었다거나 잠수를 타려는 건 아니었는데, 너무 잘하고 싶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 생긴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강릉으로 가는 걸 테고… 인물들이 누구나 좋아할 만하고 어여쁘지는 않을지 몰라도, 납득할 수 있었어.
요 진짜다. 주위가 다 아는 사람들인, 그래서 사회적 가면이 작동하는 곳을 벗어나서 일어나는 일들. 제목과 상황 때문인지, 나는 영화 속 여정이 약간 사후에 영혼이 떠나는 여행처럼 느껴지기도 해. 김멜라 소설 <제 꿈 꾸세요>처럼.
범 나에겐 여행지인 곳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장소인데, 내가 여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낭만화하기도 하잖아. 가끔은 그 이중적인 면모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진심이 나오기도 하는 듯하고… 사실 처음엔 강릉에 워낙 여러 면모가 있는데 일부만 나온 것 같아서, 강릉 사랑단으로서 조금 아쉽기도 했거든.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까 인물들이 여행자, 이방인이란 점에서 오히려 그게 더 정확한 시선 같기도 하더라.
요 맞아! 이를테면 영화에 등장한 신영극장은 강릉의 터줏대감인 동시에, 공간을 쇄신하면서 생긴 동시대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요소는 더 오래 머물러야 감지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메밀묵>

김정민 | 극 | 2026 | 32분 12초 | 컬러
요 <강이와 두기> 때도 이야기했지만 삼촌지간에 느끼는 연결감이 여기도 있었지, 그러면서도 <메밀묵>은 고모와 조카의 성별이 다르다는 데서 또 차이가 생겨.
범 고모와의 연대는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이모는 가까운데 고모는 먼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 이상하게도…?
요 <리틀 포레스트>에도 그런 대사 있잖아,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니다’. 아빠의 성별 다른 형제와 엄마의 동성 형제는 자식한테도 많이 다른 존재 같긴 해. 근데 또 한편으로, 자식이 자신의 아빠를 닮는다는 건 아빠의 형제인 고모를 닮았다는 뜻이기도 하잖아? 덜 친할지언정 내 안에도 고모의 모습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어.
범 요즘은 또 다른 케이스가 많겠지만, 어릴 때는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상 명절에 친가-외가 순으로 방문하다 보니까 고모를 만나지 못하는 일도 많았어. 고모는 시댁 가고, 나는 큰집 가고… 평소에도 고모보다는 이모들이랑 자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요 엄마와 고모의 관계도 재밌었어. 엄마한텐 고모가 시누이니까 선입견으론 약간의 긴장관계가 성립하잖아. 여기선 둘이 자매처럼 친하다는 작위적 설정은 없되, 데면데면한 채로도 여성으로서, 가족으로서 나름의 유대감이 있다는 것이 좋았어.
범 맞아. 아빠는 일도 안 하고, 받을 것만 다 받고. 근데 메밀묵에 대한 속설이 원래 있나?
요 도깨비가 메밀묵을 좋아하지 않나? 한편으로 석류는 오히려 그리스로마신화의 모티브 같기도 해. 페르세포네가 먹은 거.
범 보면서 배경이 어디인지도 궁금했어. 엔딩 크레딧을 보니까 청주랑 횡성에서 촬영했더라고.
요 메밀꽃 흐드러진 밭이 너무 멋지더라.
범 고모와 연약한 남자아이 사이 연결과 연대가 생기면서 각자 부여 받는 사회적, 성적 기대를 걷어찰 수 있어서 더 통쾌했어. 몽유병은 남성, 여성의 문제가 아닌데 할아버지는 거기서 야기되는 상황들을 여성에 의한 약탈처럼 받아들이잖아. 그걸 남자인 손자가 흐트러뜨리는 것 같아서 좋았어. 어떤 지점에선 <장손>도 좀 떠올랐어.
요 그러게. 작품 자체가 페미니즘적인데, 고모가 처한 상황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일 때부터 씌워지는 맨박스도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
<경계>

이세은 | 애니메이션 | 2025 | 10분 23초 | 컬러
요 나는 일단 첫인상으로는, <반> 볼 때도 그랬는데, ‘애니메이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점이 좋았어. 손으로 밀면 밀리는 경계, 전개도처럼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 같은 것들. 카메라로 촬영한 거였다면 카메라워크라고 부를 만한 구도와 움직임 같은 것들!
그리고 영화 안을 들여다 보면, 미스터리한 가이드 같은 인물이 등장할 때 확 호러처럼 느껴지지 않아? 경계의 움직임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움직임에 장르적인 감칠맛이 들어가는 느낌이야. <백룸>처럼? 공간의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인간들과 그걸 관망하고 부추기는 진행자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범 비행기를 타거나 고속버스를 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좌석 문제가 생기곤 하잖아. 직접적인 갈등을 빚는 건 아니더라도 ‘서로의 세이프티 존을 침범해도 되는가’, ‘내 공간은 어디까지인가’ 생각하게 되고. 나에게도 익숙한 상황과 감정에서 시작해서 재밌었고, 꼭 여행하다 꾼 꿈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요 정말, 결국 버스 안에서 꾼 꿈 같기도 하다. 인터넷에 그런 글들 있잖아. 내가 내 돈 주고 두 명분의 좌석을 사서 편하게 가려는데 노인/어린이 등 교통약자가 양보해 달라고 한다면? 해줘야 하냐, 해주지 않아도 되냐 같은 글. 이 영화 속 상황을 그런 자본의 논리로 생각하게 되기도 했어. 내가 돈이 많으면 집 여러 채를 가질 수도 있고 남의 공간을 돈 주고 살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그게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내가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은 공간을 빼앗길 수도 있고 주거나 이동의 불안에 시달릴 수도 있잖아. 나의 물질적 재산과 타인의 존재를 감지하는 감수성이 유리되어 있고, 내가 가지면 누군가는 가질 수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단 생각도 들었어. 그래서 앞서 말한 인물이 신자유주의의 수하 같단 생각이 들고, 확 무서워졌어!
범 음악이 드럼 위주로 진행되어서 극의 긴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어.
<눈길>

김다희 | 극 | 2025 | 7분 23초 | 컬러
범 정동진에서 <눈길> 첫 장면 나오면 확 분위기 바뀌면서 좋겠다 상상했어.
요 맞아맞아, 오프닝 시퀀스가 좋았어. 올해 <눈길> <위도> 이런 중의적인 제목이 보이네.
범 다른 진학보다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갈 때가 엄청 격변의 시기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는 과정이랄까? 교복도 입어야 되고. 큰 변화가 있는 시기라서 더 들뜨고 낯설기도 한, 그 감정이 잘 보여서 좋았어.
요 화면이 교실로 전환된 직후에, 앵글 밖에 있는 여자 친구들의 수다가 들리잖아. 여중 가게 되었다, 이런 내용의. 그게 관객을 위한 정보전달이기도 하면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들뜸과 긴장감도 들려주는 것 같았어. 그리움, 이미 보고싶음, 눈길이 가는 마음 같은 걸 설득력 있게 담은 점도 좋았어. 한편으로 나는 영화에서 선생님을 보여주는 부분이 좀 재밌었는데, 선생님은 너무 밝고 좋은 분인데 주인공이 기죽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 나만의 뇌피셜이긴 해.
범 선생님 에너지가 힙합 하실 거 같아.
요 반면 우진이는 <섬집아기>를 구슬프게 연주하는 감수성을 갖고 있고 말야. 곡이 곡이다 보니, 청자가 정해져 있고 그 청자한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연주한다는 느낌보다도 혼자 조심스럽게 음악으로 마음을 표출한달지, 일종의 의식으로서 연주라는 행위를 한달지 하는 느낌도 들었어.
범 기다리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졸업식의 어수선함이 아니라 모든 학기가 다 끝나고 선생님도 아이들도 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시간대가 배경인 것도 좋았어.
요 맞아. 학교에서 안 나가도 되나? 정동초의 우리마냥 그냥 있는 건가? 그러고 보면 정동진독립영화제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리잖아. 이 영화에 몰입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야. 모든 배우 분들이 그렇겠지만, 어린이 배우들이 상황에 푹 들어갔을 때 보여주는 집중력도 너무 좋고.
범 연출의도를 보면 촬영 때 우진 배우가 연주를 마음에 안 들어했다는데, 난 그게 좋았어. 연주가 너무 빼어나면 갑분 영재발굴단 같고, ‘오, 멋쟁인데?’ 생각해버렸을 걸?
요 얄궂게 전격 클로즈업~! 하지도 않고. 히히. 투박하다고 하지만 사실 대사와 장면의 연결, 배우들의 표정이라는 노력과 우연의 만남을 섬세하게 디자인했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
💬📃🚧⛰️섹션6: <긴급재난문자><To you(;너에게)><덕창><자매의 등산>
<긴급재난문자>

최형섭 | 극 | 2026 | 16분 46초 | 혼합
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고 천재지변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보는 것도 좋아해서, 이 영화에 속절없이 끌렸어. 남자 주인공의 선택도 흥미로웠어.
요 인물들이 처량하다면 처량한 상황인데 아무도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재밌었어. 내 시각에서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영화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톤이 사뭇 달라서, 일상 속에 틈입한 비일상적 사건임이 드러나는 것도 재미있었어. 좀 더 몽환적이거나, 서스펜스를 주거나, 비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대신 담백한 선택을 했다고 느껴지는 점도 그렇고.
범 아주 큰 관련은 없는 것도 같지만… <아사코>도 좀 생각이 났어. 이 영화 주인공 여러모로 그린 듯한 회피형 인물다워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요 에이. 그치만 흥미로운 캐릭터긴 해. 고전적인 영웅 서사를 생각하면 나만 무언가를 본다 - 선택받았다, 소명을 받았다 - 집을 떠나 영웅이 된다로 이어져야 할 것 같은데 말야. 그도 아니면, 울면서 용기 내는 동시대 소시민적 영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하 후략하겠습니다?
범 다른 인물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면서 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도 재미있고 말야. 한동안 긴급재난문자가 엄청 울리지 않았어? 요즘은 실종자 문자가 엄청 자주 오고.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고, 사람들이 그걸 바라봤다가 태연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들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 됐어. 가끔은 참 이상하다 싶기도 하거든. 분명 어딘가에서는 커다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나는 거기서 빗겨나 있다는 감각이. 영화랑 너무 관련 없는 얘기인가…?
요 아냐, 완전 관련있어. 제목이 <긴급재난문자>잖아! 생각해 보면 재난문자를 받고서, 예를 들어 공공장소 같은 곳에서 “여러분~!! 폭염경보랍니다! 집 들어가세요~!” 크게 외친다거나, 선구자, 주동자, 최초의 인물이 될 용기가 내게 있을까 싶기도 해. …근데 사실 난 있긴 해… 관심 끄는 거 좀 좋아하기도 하고… ‘긴급재난문자’는 말 그대로 긴급하고 재난인 상황에 발송되는 것인데도 일상이 되었고, 그 내용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개인의 선택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 영화와 맞물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조금 다른 소리지만 나는 아이유 <에잇>의 슈가 랩 부분 ‘작별은 마치 재난문자 같지’라는 가사를 좋아하는데, 재난문자라는 단어가 너무 일상어여서 깬다는 반응을 본 적이 있어. 코로나19때 울리는 긴급재난문자는 일상을 깨트리는 재난이었고, 그 노래에서처럼 20대 후반 이후의 삶은 만남도 만남이지만 작별로 가득하단 걸 보여주는 거 같았는데.
범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커다란 재난 앞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영웅이 되지만, 평범한 사람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류를 구하는 일은 아니어도, 과연 내 가족만이라도 재난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싶은데. 나는 그냥 스마트폰을 변기에 내리게 되려나. 모르는 게 약이다…
<To you(;너에게)>

양도혜 | 극 | 2026 | 28분 37초 | 컬러
범 요즘 나는 리센느 좋아함. 갑분 고백!
요 나도 나도! 너무 귀여워! 이렇게 보석 같은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니까 아이돌을 사랑하는 걸 못 멈추나봐.
범 요즘 좋아하는 팀들 콘텐츠 볼 게 많아서 바쁘고 너무 좋아. 나는 팬미팅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보면 표를 구하는 것만해도 엄청 난이도가 높더라고. 아이돌이 ‘아 진짜요?’만 계속해서 탈덕했다는 후기 같은 것도 많고.
요 진짜. 사랑하니까 점점 내 안에서 미화가 되고 나와 동일시도 될 텐데, 실제로 만난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거니까.
범 어떻게 보면 스타와 팬 관계는 일방향적으로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대하는 바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아이돌’의 어원처럼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면 조금의 낙차에도 더 고통스러워지고.
요 편지라는 건 어떻게 보면 일방의 매체잖아. 쓰고 전송하면 상대가 봤는지 안 봤는지, 답장할 건지 말 건지 모른 채 있을 수 있고. 그런데 갑자기 답장이 온다면? 그 내용이 악의적이든 선하든 상관 없이 그저 ‘상대방이 나의 액션에 리액션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일방성이 깨지고 감정 누수가 일어나게 되는 것 같아.
범 나는 둘이 만나는 장면이 스릴러처럼 느껴졌어. 네 말 들으니까 그것도 생각난다. 지난 상영작인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주인공인 이승윤이 그랬잖아. 팬들은 내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찾아볼 수 있지만 자기는 팬이 자기 떠나면 나는 궁금해 하는 수 밖에 없다고. 그게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방향이라 신기했었거든.
요 정말! 보내는 사람 입장에선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발송만 하는 거지만, 오히려 받는 사람 입장에선 발신인이 써있지 않은 편지에 답장할 수 없어 막막하기도 한 게 <To You>가 유비하는 관계 같기도 하다. 이전에는 미디어에서 팬덤 문화가 좀 더 피상적으로 그려지기도 했던 거 같은데, 점점 구체성을 갖는 게 재밌기도 해. 그냥 ‘팬사인회에 간다!’가 아니라, ‘팔찌 옮기기로 돈을 벌어서 팬싸인회에 간다!’ 같이.
범 나는 혜진이가 편지 쓰면서 맨 처음 ‘산호’ 이름을 쓰려고 여러 번 연습하는 장면이 마음을 아리게 하더라.
요 사랑은 너무 눈물 나고 대단한 일이야… 지난해 케임브리지 ‘올해의 단어’로 parasocial이 선정되었을 만큼, 이 관계가 빈번하고 익숙한 것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어.
범 나도 초등학생 때 건축 박람회 가서 전원주 선생님 보고 아는 사람 같아서 인사했었는데, 사진도 찍고. 혜진이 어떤 면에서 산호를 구원이라고 믿기도 하는데, 스타-팬 구도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발생하는 것 같아. 하지만 그 불균형성이 건강하기란 어렵기도 하니까…
요 맞아맞아. 영화 바깥에 있는 얘기긴 하지만, 한때 일부 아이돌 팬덤에서 팬 브이로그로 자기가 얼마나 옷도 잘입고 ‘갓생’을 사는지 보여주는 게 일종의 트렌드가 된 적이 있었던 것 같거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소외도 적지 않았겠구나 새삼 생각했어.
범 영화 내에서도 스스럼없이 해외 스케줄에 가는 팬들이 나오잖아. 팬덤의 모습을 공감하는 시선으로 보는 게 내게도 많은 걸 느끼게 해.
<덕창>

이해지, 오우택 | 극 | 2025 | 11분 54초 | 컬러
범 초반에 덕창이 엄마랑 통화하면서 “덕창이가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라는 문장을 외는데… 나도 유치원 다닐 때, 내가 너무 소심하니까 유치원 가기 전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랑 같이 “적극적으로 살자~!” 구호를 외쳤단 말이야? 그게 생각나서 좀 당황했어.
요 띠용 너무 귀여움! 영화에서도 어린이 시절의 홈비디오에서 덕창이 이미 많이 넘어졌음을 보여주는 게 좋았는데. 지금의 덕창은 신호수 마네킹에 비견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주기도 하고.
범 커서 하는 달리기는 그 자체로 인생사 곡절을 넘는 극복의 행위이기도 하다고 느꼈어.
요 생각해 보면 달리기는 정말 단순한 행위잖아. 장애물 달리기를 생각하면 종종 ‘인간 진짜 희한하다, 목적도 없이 뛴다는 것만으로도 별난데 중간에 고의로 허들까지 설치하다니’ 하는 마음이 들거든. 근데 사실 면접도 어떤 면에선 비슷한 거 같아. 역량을 보는 자리라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참 인위적인 행위이고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닌 일 같거든. 그래서 내 말은… 덕창이의 달리기가 허탈하다기 보다는, ‘그러네, 그 대단치 않은 게 인생이네, 별 거 아냐! 고 덕창!’ 하게 된달까?
범 덕창을 보며 발생하는 쾌감과 응원하는 마음이 있을 것 같아.
요 한편으로 난 이럴 때 좀 배신감 느껴. 다 나처럼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성수치로 괴로워하는 게 아니야? 타자화가 된단 말이야?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응원이라는 외부의 일을 하기엔, 그냥 덕창이가 나 같아! 아, 배우님도 GV 오시면 좋겠다. 내 편인지 어떤지 궁금해.
범 나도! 회사 직원 역할한 배우 분들도 오시면 좋겠다. MZ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여쭤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자매의 등산>

김수현 | 극 | 2025 | 18분 2초 | 컬러
요 <한 판 더>부터 정말 자매통 온다. 나도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
범 누가 나 괴롭힌 사람 뒷통수 한 대 대신 때려줬으면!
요 나는 이 영화가 초반에 모든 설명을 싹 풀어내는 방식이 노련해서 감탄했어. 대놓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두 인물의 관계나 상황 같은 정보가 밀려들어오는 것 같았어. 시나리오와 연출의 힘이기도 하고 배우들의 역량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어.
범 나도! 단편마다 목표는 다르겠지만, 영화에서 인물을 빠르게 또 효과적으로 보여줘야 할 때 예시로 나올 수 있을 만한 시퀀스라고 생각했어. 둘이 연락해서 용건을 주고받는 등의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처음부터 두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짧은 대화로 상황을 딱!
요 맞아 맞아. 언니가 00라는 것을 소재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물의 일부,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된 뿌리로 담아낸 것도 좋았어. 사실 나는 장녀로서 ‘K-장녀’ 얘기에 공감하는 한편으로 ‘둘째도 힘들겠지’ 생각할 때가 많거든. 이 자매를 보면서도 그 생각을 했어. 같이 등산을 가도, 자기만이 있을 수 있는 그 자리 그 시야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지지고볶는 마음에 대해서.
범 이들을 보면서 음성언어를 이용한 대화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소통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 그리고 구남친 개 어이없음. 치사하게 스님 되냐?
요 조금이라도 온정 베풀었으면 ‘자매의’ 등산이란 방점이 약해졌을 텐데, 잘됐지 뭐!
범 맞아, 그냥 계속 철딱서니 없으니까 관객 입장에서 마음 편하게 ‘으휴’ 할 수 있었음. 그리고 역시 마지막에, 동생이 00하는 장면에서 오는 감동이 컸다!
요 사실 그냥 충격의 펀치 한 방으로 소모할 거였다면 아주 짧은 길이로도 충분했을 텐데, 우직하게 끝까지 이어지는 게 좋았어.
올해 영화제는 유례 없이 실내외 동시 상영, 강릉 시내와 정동진 2개소 상영 등의 방식으로 관객 여러분을 찾았습니다.
관객이 없는 영화제란 성립될 수 없겠지요. 폭우라는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큰 관심을 가져 주신 분들 덕에 힘을 내어 마지막 두 섹션의 상영작을 준비합니다.
모쪼록 어려움 속에서도 먹구름 사이 은빛 선과 같은 영화적 순간과 마주치시는 시간이었기를 바라겠습니다.
정리 / 데일리팀
정동초등학교에서는 일요일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는 월요일에 상영되는 섹션5와 6을 소개합니다.
데일리팀도 관객으로서 도란도란 작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은 내용은 최대한 언급 자제하고, 일부 표현만 00(자체 모자이크!)로 남겨두었습니다. (숨긴 단어가 몇 글자든 상관 없이 몽땅 00으로 표시하여 꽁꽁 감추었습니다.)
📽️🌰💺❄️섹션5: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메밀묵><경계><눈길>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
서예인 | 극 | 2025 | 35분 37초 | 컬러
요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거의 매년 상영되는 것 같은데, 그중 이 영화의 재미는! 갑자기 배우가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 나는 ‘죽은 척’에서 시작되는 자기탐색의 코미디를 상상했는데, 어느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버디 무비!
범 둘 다 불안 바깥에 존재하기 어려운 직업군이기도 하고, 둘 사이의 관계도 협력자처럼 느껴지지만 때로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되기도 하니까. 나는 둘의 이야기가 나란히 나오는 게 재밌었어. 어쩌면 한 명은 죽음으로, 다른 한 명은 잠수로 도망친 사람들이고.
요 감독은 자기가 써야만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고, 다 쓰더라도 제작지원 등 경제적 여건이 충족되어야만 찍을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보여주는 건 또 그냥 보여줄 수 있나? 배우도 마찬가지야. 선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가 많은 직업이고 말야. 둘 다 노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취향과 운 같은 요소들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해. 말하다 보니… 나는 ‘죽은 척’이라는 게 재밌어서 그 상황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도 좋을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다분히 은유기도 하구나!
범 나는 ‘척’에 방점을 두고 봤던 거 같아. 사실은 진짜 죽고 싶었다거나 잠수를 타려는 건 아니었는데, 너무 잘하고 싶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 생긴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강릉으로 가는 걸 테고… 인물들이 누구나 좋아할 만하고 어여쁘지는 않을지 몰라도, 납득할 수 있었어.
요 진짜다. 주위가 다 아는 사람들인, 그래서 사회적 가면이 작동하는 곳을 벗어나서 일어나는 일들. 제목과 상황 때문인지, 나는 영화 속 여정이 약간 사후에 영혼이 떠나는 여행처럼 느껴지기도 해. 김멜라 소설 <제 꿈 꾸세요>처럼.
범 나에겐 여행지인 곳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장소인데, 내가 여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낭만화하기도 하잖아. 가끔은 그 이중적인 면모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진심이 나오기도 하는 듯하고… 사실 처음엔 강릉에 워낙 여러 면모가 있는데 일부만 나온 것 같아서, 강릉 사랑단으로서 조금 아쉽기도 했거든.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까 인물들이 여행자, 이방인이란 점에서 오히려 그게 더 정확한 시선 같기도 하더라.
요 맞아! 이를테면 영화에 등장한 신영극장은 강릉의 터줏대감인 동시에, 공간을 쇄신하면서 생긴 동시대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요소는 더 오래 머물러야 감지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메밀묵>
김정민 | 극 | 2026 | 32분 12초 | 컬러
요 <강이와 두기> 때도 이야기했지만 삼촌지간에 느끼는 연결감이 여기도 있었지, 그러면서도 <메밀묵>은 고모와 조카의 성별이 다르다는 데서 또 차이가 생겨.
범 고모와의 연대는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이모는 가까운데 고모는 먼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 이상하게도…?
요 <리틀 포레스트>에도 그런 대사 있잖아,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니다’. 아빠의 성별 다른 형제와 엄마의 동성 형제는 자식한테도 많이 다른 존재 같긴 해. 근데 또 한편으로, 자식이 자신의 아빠를 닮는다는 건 아빠의 형제인 고모를 닮았다는 뜻이기도 하잖아? 덜 친할지언정 내 안에도 고모의 모습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어.
범 요즘은 또 다른 케이스가 많겠지만, 어릴 때는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상 명절에 친가-외가 순으로 방문하다 보니까 고모를 만나지 못하는 일도 많았어. 고모는 시댁 가고, 나는 큰집 가고… 평소에도 고모보다는 이모들이랑 자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요 엄마와 고모의 관계도 재밌었어. 엄마한텐 고모가 시누이니까 선입견으론 약간의 긴장관계가 성립하잖아. 여기선 둘이 자매처럼 친하다는 작위적 설정은 없되, 데면데면한 채로도 여성으로서, 가족으로서 나름의 유대감이 있다는 것이 좋았어.
범 맞아. 아빠는 일도 안 하고, 받을 것만 다 받고. 근데 메밀묵에 대한 속설이 원래 있나?
요 도깨비가 메밀묵을 좋아하지 않나? 한편으로 석류는 오히려 그리스로마신화의 모티브 같기도 해. 페르세포네가 먹은 거.
범 보면서 배경이 어디인지도 궁금했어. 엔딩 크레딧을 보니까 청주랑 횡성에서 촬영했더라고.
요 메밀꽃 흐드러진 밭이 너무 멋지더라.
범 고모와 연약한 남자아이 사이 연결과 연대가 생기면서 각자 부여 받는 사회적, 성적 기대를 걷어찰 수 있어서 더 통쾌했어. 몽유병은 남성, 여성의 문제가 아닌데 할아버지는 거기서 야기되는 상황들을 여성에 의한 약탈처럼 받아들이잖아. 그걸 남자인 손자가 흐트러뜨리는 것 같아서 좋았어. 어떤 지점에선 <장손>도 좀 떠올랐어.
요 그러게. 작품 자체가 페미니즘적인데, 고모가 처한 상황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일 때부터 씌워지는 맨박스도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
<경계>
이세은 | 애니메이션 | 2025 | 10분 23초 | 컬러
요 나는 일단 첫인상으로는, <반> 볼 때도 그랬는데, ‘애니메이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점이 좋았어. 손으로 밀면 밀리는 경계, 전개도처럼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 같은 것들. 카메라로 촬영한 거였다면 카메라워크라고 부를 만한 구도와 움직임 같은 것들!
그리고 영화 안을 들여다 보면, 미스터리한 가이드 같은 인물이 등장할 때 확 호러처럼 느껴지지 않아? 경계의 움직임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움직임에 장르적인 감칠맛이 들어가는 느낌이야. <백룸>처럼? 공간의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인간들과 그걸 관망하고 부추기는 진행자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범 비행기를 타거나 고속버스를 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좌석 문제가 생기곤 하잖아. 직접적인 갈등을 빚는 건 아니더라도 ‘서로의 세이프티 존을 침범해도 되는가’, ‘내 공간은 어디까지인가’ 생각하게 되고. 나에게도 익숙한 상황과 감정에서 시작해서 재밌었고, 꼭 여행하다 꾼 꿈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요 정말, 결국 버스 안에서 꾼 꿈 같기도 하다. 인터넷에 그런 글들 있잖아. 내가 내 돈 주고 두 명분의 좌석을 사서 편하게 가려는데 노인/어린이 등 교통약자가 양보해 달라고 한다면? 해줘야 하냐, 해주지 않아도 되냐 같은 글. 이 영화 속 상황을 그런 자본의 논리로 생각하게 되기도 했어. 내가 돈이 많으면 집 여러 채를 가질 수도 있고 남의 공간을 돈 주고 살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그게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내가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은 공간을 빼앗길 수도 있고 주거나 이동의 불안에 시달릴 수도 있잖아. 나의 물질적 재산과 타인의 존재를 감지하는 감수성이 유리되어 있고, 내가 가지면 누군가는 가질 수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단 생각도 들었어. 그래서 앞서 말한 인물이 신자유주의의 수하 같단 생각이 들고, 확 무서워졌어!
범 음악이 드럼 위주로 진행되어서 극의 긴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어.
<눈길>
김다희 | 극 | 2025 | 7분 23초 | 컬러
범 정동진에서 <눈길> 첫 장면 나오면 확 분위기 바뀌면서 좋겠다 상상했어.
요 맞아맞아, 오프닝 시퀀스가 좋았어. 올해 <눈길> <위도> 이런 중의적인 제목이 보이네.
범 다른 진학보다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갈 때가 엄청 격변의 시기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는 과정이랄까? 교복도 입어야 되고. 큰 변화가 있는 시기라서 더 들뜨고 낯설기도 한, 그 감정이 잘 보여서 좋았어.
요 화면이 교실로 전환된 직후에, 앵글 밖에 있는 여자 친구들의 수다가 들리잖아. 여중 가게 되었다, 이런 내용의. 그게 관객을 위한 정보전달이기도 하면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들뜸과 긴장감도 들려주는 것 같았어. 그리움, 이미 보고싶음, 눈길이 가는 마음 같은 걸 설득력 있게 담은 점도 좋았어. 한편으로 나는 영화에서 선생님을 보여주는 부분이 좀 재밌었는데, 선생님은 너무 밝고 좋은 분인데 주인공이 기죽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 나만의 뇌피셜이긴 해.
범 선생님 에너지가 힙합 하실 거 같아.
요 반면 우진이는 <섬집아기>를 구슬프게 연주하는 감수성을 갖고 있고 말야. 곡이 곡이다 보니, 청자가 정해져 있고 그 청자한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연주한다는 느낌보다도 혼자 조심스럽게 음악으로 마음을 표출한달지, 일종의 의식으로서 연주라는 행위를 한달지 하는 느낌도 들었어.
범 기다리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졸업식의 어수선함이 아니라 모든 학기가 다 끝나고 선생님도 아이들도 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시간대가 배경인 것도 좋았어.
요 맞아. 학교에서 안 나가도 되나? 정동초의 우리마냥 그냥 있는 건가? 그러고 보면 정동진독립영화제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리잖아. 이 영화에 몰입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야. 모든 배우 분들이 그렇겠지만, 어린이 배우들이 상황에 푹 들어갔을 때 보여주는 집중력도 너무 좋고.
범 연출의도를 보면 촬영 때 우진 배우가 연주를 마음에 안 들어했다는데, 난 그게 좋았어. 연주가 너무 빼어나면 갑분 영재발굴단 같고, ‘오, 멋쟁인데?’ 생각해버렸을 걸?
요 얄궂게 전격 클로즈업~! 하지도 않고. 히히. 투박하다고 하지만 사실 대사와 장면의 연결, 배우들의 표정이라는 노력과 우연의 만남을 섬세하게 디자인했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
💬📃🚧⛰️섹션6: <긴급재난문자><To you(;너에게)><덕창><자매의 등산>
<긴급재난문자>
최형섭 | 극 | 2026 | 16분 46초 | 혼합
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고 천재지변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보는 것도 좋아해서, 이 영화에 속절없이 끌렸어. 남자 주인공의 선택도 흥미로웠어.
요 인물들이 처량하다면 처량한 상황인데 아무도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재밌었어. 내 시각에서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영화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톤이 사뭇 달라서, 일상 속에 틈입한 비일상적 사건임이 드러나는 것도 재미있었어. 좀 더 몽환적이거나, 서스펜스를 주거나, 비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대신 담백한 선택을 했다고 느껴지는 점도 그렇고.
범 아주 큰 관련은 없는 것도 같지만… <아사코>도 좀 생각이 났어. 이 영화 주인공 여러모로 그린 듯한 회피형 인물다워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요 에이. 그치만 흥미로운 캐릭터긴 해. 고전적인 영웅 서사를 생각하면 나만 무언가를 본다 - 선택받았다, 소명을 받았다 - 집을 떠나 영웅이 된다로 이어져야 할 것 같은데 말야. 그도 아니면, 울면서 용기 내는 동시대 소시민적 영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하 후략하겠습니다?
범 다른 인물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면서 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도 재미있고 말야. 한동안 긴급재난문자가 엄청 울리지 않았어? 요즘은 실종자 문자가 엄청 자주 오고.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고, 사람들이 그걸 바라봤다가 태연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들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 됐어. 가끔은 참 이상하다 싶기도 하거든. 분명 어딘가에서는 커다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나는 거기서 빗겨나 있다는 감각이. 영화랑 너무 관련 없는 얘기인가…?
요 아냐, 완전 관련있어. 제목이 <긴급재난문자>잖아! 생각해 보면 재난문자를 받고서, 예를 들어 공공장소 같은 곳에서 “여러분~!! 폭염경보랍니다! 집 들어가세요~!” 크게 외친다거나, 선구자, 주동자, 최초의 인물이 될 용기가 내게 있을까 싶기도 해. …근데 사실 난 있긴 해… 관심 끄는 거 좀 좋아하기도 하고… ‘긴급재난문자’는 말 그대로 긴급하고 재난인 상황에 발송되는 것인데도 일상이 되었고, 그 내용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개인의 선택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 영화와 맞물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조금 다른 소리지만 나는 아이유 <에잇>의 슈가 랩 부분 ‘작별은 마치 재난문자 같지’라는 가사를 좋아하는데, 재난문자라는 단어가 너무 일상어여서 깬다는 반응을 본 적이 있어. 코로나19때 울리는 긴급재난문자는 일상을 깨트리는 재난이었고, 그 노래에서처럼 20대 후반 이후의 삶은 만남도 만남이지만 작별로 가득하단 걸 보여주는 거 같았는데.
범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커다란 재난 앞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영웅이 되지만, 평범한 사람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류를 구하는 일은 아니어도, 과연 내 가족만이라도 재난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싶은데. 나는 그냥 스마트폰을 변기에 내리게 되려나. 모르는 게 약이다…
<To you(;너에게)>

양도혜 | 극 | 2026 | 28분 37초 | 컬러
범 요즘 나는 리센느 좋아함. 갑분 고백!
요 나도 나도! 너무 귀여워! 이렇게 보석 같은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니까 아이돌을 사랑하는 걸 못 멈추나봐.
범 요즘 좋아하는 팀들 콘텐츠 볼 게 많아서 바쁘고 너무 좋아. 나는 팬미팅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보면 표를 구하는 것만해도 엄청 난이도가 높더라고. 아이돌이 ‘아 진짜요?’만 계속해서 탈덕했다는 후기 같은 것도 많고.
요 진짜. 사랑하니까 점점 내 안에서 미화가 되고 나와 동일시도 될 텐데, 실제로 만난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거니까.
범 어떻게 보면 스타와 팬 관계는 일방향적으로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대하는 바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아이돌’의 어원처럼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면 조금의 낙차에도 더 고통스러워지고.
요 편지라는 건 어떻게 보면 일방의 매체잖아. 쓰고 전송하면 상대가 봤는지 안 봤는지, 답장할 건지 말 건지 모른 채 있을 수 있고. 그런데 갑자기 답장이 온다면? 그 내용이 악의적이든 선하든 상관 없이 그저 ‘상대방이 나의 액션에 리액션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일방성이 깨지고 감정 누수가 일어나게 되는 것 같아.
범 나는 둘이 만나는 장면이 스릴러처럼 느껴졌어. 네 말 들으니까 그것도 생각난다. 지난 상영작인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주인공인 이승윤이 그랬잖아. 팬들은 내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찾아볼 수 있지만 자기는 팬이 자기 떠나면 나는 궁금해 하는 수 밖에 없다고. 그게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방향이라 신기했었거든.
요 정말! 보내는 사람 입장에선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발송만 하는 거지만, 오히려 받는 사람 입장에선 발신인이 써있지 않은 편지에 답장할 수 없어 막막하기도 한 게 <To You>가 유비하는 관계 같기도 하다. 이전에는 미디어에서 팬덤 문화가 좀 더 피상적으로 그려지기도 했던 거 같은데, 점점 구체성을 갖는 게 재밌기도 해. 그냥 ‘팬사인회에 간다!’가 아니라, ‘팔찌 옮기기로 돈을 벌어서 팬싸인회에 간다!’ 같이.
범 나는 혜진이가 편지 쓰면서 맨 처음 ‘산호’ 이름을 쓰려고 여러 번 연습하는 장면이 마음을 아리게 하더라.
요 사랑은 너무 눈물 나고 대단한 일이야… 지난해 케임브리지 ‘올해의 단어’로 parasocial이 선정되었을 만큼, 이 관계가 빈번하고 익숙한 것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어.
범 나도 초등학생 때 건축 박람회 가서 전원주 선생님 보고 아는 사람 같아서 인사했었는데, 사진도 찍고. 혜진이 어떤 면에서 산호를 구원이라고 믿기도 하는데, 스타-팬 구도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발생하는 것 같아. 하지만 그 불균형성이 건강하기란 어렵기도 하니까…
요 맞아맞아. 영화 바깥에 있는 얘기긴 하지만, 한때 일부 아이돌 팬덤에서 팬 브이로그로 자기가 얼마나 옷도 잘입고 ‘갓생’을 사는지 보여주는 게 일종의 트렌드가 된 적이 있었던 것 같거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소외도 적지 않았겠구나 새삼 생각했어.
범 영화 내에서도 스스럼없이 해외 스케줄에 가는 팬들이 나오잖아. 팬덤의 모습을 공감하는 시선으로 보는 게 내게도 많은 걸 느끼게 해.
<덕창>
이해지, 오우택 | 극 | 2025 | 11분 54초 | 컬러
범 초반에 덕창이 엄마랑 통화하면서 “덕창이가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라는 문장을 외는데… 나도 유치원 다닐 때, 내가 너무 소심하니까 유치원 가기 전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랑 같이 “적극적으로 살자~!” 구호를 외쳤단 말이야? 그게 생각나서 좀 당황했어.
요 띠용 너무 귀여움! 영화에서도 어린이 시절의 홈비디오에서 덕창이 이미 많이 넘어졌음을 보여주는 게 좋았는데. 지금의 덕창은 신호수 마네킹에 비견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주기도 하고.
범 커서 하는 달리기는 그 자체로 인생사 곡절을 넘는 극복의 행위이기도 하다고 느꼈어.
요 생각해 보면 달리기는 정말 단순한 행위잖아. 장애물 달리기를 생각하면 종종 ‘인간 진짜 희한하다, 목적도 없이 뛴다는 것만으로도 별난데 중간에 고의로 허들까지 설치하다니’ 하는 마음이 들거든. 근데 사실 면접도 어떤 면에선 비슷한 거 같아. 역량을 보는 자리라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참 인위적인 행위이고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닌 일 같거든. 그래서 내 말은… 덕창이의 달리기가 허탈하다기 보다는, ‘그러네, 그 대단치 않은 게 인생이네, 별 거 아냐! 고 덕창!’ 하게 된달까?
범 덕창을 보며 발생하는 쾌감과 응원하는 마음이 있을 것 같아.
요 한편으로 난 이럴 때 좀 배신감 느껴. 다 나처럼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성수치로 괴로워하는 게 아니야? 타자화가 된단 말이야?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응원이라는 외부의 일을 하기엔, 그냥 덕창이가 나 같아! 아, 배우님도 GV 오시면 좋겠다. 내 편인지 어떤지 궁금해.
범 나도! 회사 직원 역할한 배우 분들도 오시면 좋겠다. MZ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여쭤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자매의 등산>
김수현 | 극 | 2025 | 18분 2초 | 컬러
요 <한 판 더>부터 정말 자매통 온다. 나도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
범 누가 나 괴롭힌 사람 뒷통수 한 대 대신 때려줬으면!
요 나는 이 영화가 초반에 모든 설명을 싹 풀어내는 방식이 노련해서 감탄했어. 대놓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두 인물의 관계나 상황 같은 정보가 밀려들어오는 것 같았어. 시나리오와 연출의 힘이기도 하고 배우들의 역량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어.
범 나도! 단편마다 목표는 다르겠지만, 영화에서 인물을 빠르게 또 효과적으로 보여줘야 할 때 예시로 나올 수 있을 만한 시퀀스라고 생각했어. 둘이 연락해서 용건을 주고받는 등의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처음부터 두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짧은 대화로 상황을 딱!
요 맞아 맞아. 언니가 00라는 것을 소재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물의 일부,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된 뿌리로 담아낸 것도 좋았어. 사실 나는 장녀로서 ‘K-장녀’ 얘기에 공감하는 한편으로 ‘둘째도 힘들겠지’ 생각할 때가 많거든. 이 자매를 보면서도 그 생각을 했어. 같이 등산을 가도, 자기만이 있을 수 있는 그 자리 그 시야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지지고볶는 마음에 대해서.
범 이들을 보면서 음성언어를 이용한 대화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소통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 그리고 구남친 개 어이없음. 치사하게 스님 되냐?
요 조금이라도 온정 베풀었으면 ‘자매의’ 등산이란 방점이 약해졌을 텐데, 잘됐지 뭐!
범 맞아, 그냥 계속 철딱서니 없으니까 관객 입장에서 마음 편하게 ‘으휴’ 할 수 있었음. 그리고 역시 마지막에, 동생이 00하는 장면에서 오는 감동이 컸다!
요 사실 그냥 충격의 펀치 한 방으로 소모할 거였다면 아주 짧은 길이로도 충분했을 텐데, 우직하게 끝까지 이어지는 게 좋았어.
올해 영화제는 유례 없이 실내외 동시 상영, 강릉 시내와 정동진 2개소 상영 등의 방식으로 관객 여러분을 찾았습니다.
관객이 없는 영화제란 성립될 수 없겠지요. 폭우라는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큰 관심을 가져 주신 분들 덕에 힘을 내어 마지막 두 섹션의 상영작을 준비합니다.
모쪼록 어려움 속에서도 먹구름 사이 은빛 선과 같은 영화적 순간과 마주치시는 시간이었기를 바라겠습니다.
정리 / 데일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