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질답을 고스란히 옮기는 일이라지만, 정리 과정에서 같은 단어가 반복해 사용되는 것이 신경 쓰여 유의어로 대체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인터뷰에선 한 가지 단어를 도무지 대체하지 못하고 마냥 반복해서 썼다. 그건 바로, ‘행복’

Q. 이 작품을 맨 처음 봤을 때 많이들 궁금해하는 건 “진짜 무작위로 선택한 두 단어로, 영화에 드러난 흐름 그대로 촬영된 걸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이고 연출된 것일까?”일 것 같다.
정와니 감독(이하 ‘와니’): 두 단어를 조합하여 영상을 만드는 수업이 있었다. 그때 사전을 펼쳐 나온 페이지에서 서글픔이라는 단어와 후회라는 단어를 꺼내어 만들게 됐다. 솔직히 서글픔, 후회라는 단어에 근접하고자 사전을 좀 여러 번 펼치긴 했다.(웃음) 완전히 인위적으로 연출된 장면은 아니지만, 서글픔이라는 감정을 다루려는 마음은 은연중 갖고 있었다.
구영자 배우(이하 ‘영자’): 조금 보충하자면, 촬영을 할 때가 코로나가 막 돌던 시기다. 와니가 나랑 친하니까, 내가 혼자 외롭게 사는 게 어린 가슴에 사무쳤던 것 같다. 나한테서 후회하는 기색을 느꼈을 것도 같고, 아유 눈물 나. 더불어서 영화 앞부분에 보면 사전에다가 꽃을 딱 올려놓고 찍지 않았나. 내가 화초를 열심히 기르고 사랑을 주는데 와니가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 아닌가 싶다.
Q. 그것도 궁금했다. 첫 장면에 사전 옆으로 풀꽃을 드리운 것. 누구 솜씨일까 싶었다.
영자: 와니! 쟤가 아무래도 뭐가 되긴 되겠구나 싶더라고.
하나 더 덧붙이고 싶다. 와니가 4학년 때인데, 애 아버지 부탁으로 창덕궁 근처에서 와니를 봐준 적이 있다. 시간이 늦어서 창덕궁은 못 가고, 근처 흥선대원군 살던 운현궁이 있어가지고 거길 같이 갔다. 근데 애가 들어가자마자 벌떡 누워버리는 거다. 어디 아픈가 싶어서 화들짝 놀란 와중에 애가 또박또박 그러는 거다. “할머니, 지붕의 문양을 찍으려면 누워서 찍어야죠”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 돋는다. 그때부터 크게 될 놈인가 보다 했지.
와니: 아니…! (하지만 구영자 배우는 멈추지 않았다)
영자: 4학년짜리가 자기 아버지가 준 낡은 카메라 하나 목에 걸고 돌아다녔거든. 그러곤 와니를 자주 불러서 놀았다. 조계사 같은 데 데리고 가면 와니는 거기서 또 사진을 찍었지. 거기 겨울엔 국화빵이 또 와따야.
Q. 돌아가서, ‘할머니를 캐스팅한 픽션 영화를 만들겠다’는 기획 자체가 진짜였는지도 궁금했다. 작품의 논리적 전개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현재의 결과물에 도달하기 위한 장치일까 싶기도 했다.
와니: 실제 작업 흐름이다. 서글픔이랑 후회라는 단어를 가지고 극영화를 찍으려고 했고, 서글픔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잘 안 와닿아서 누가 그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인생 경험이 많은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렇게 로그라인을 뽑고 경태한테도 ‘다음주에 촬영할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라’ 전화를 했다. 1회차에 할머니를 찍고 2, 3회차에 경태를 찍기로 했는데, 할머니 촬영본을 열어 보니까 내가 할머니에게서 너무 억지로 서글픔을 끌어내려고 하는 게 느껴지더라. 뭔가가 잘못됐단 걸 깨닫고 지금의 방향성을 가져가게 됐다. 이 생각을 다큐멘터리로 다 담아보자 하면서. 할머니를 그저 나의 시선에서 바라봤던, 실제 할머니의 삶이 어땠는지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첫 단계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분들이 내가 느낀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실제로 완성된 <서글픈 후회>는 어떤 면에선 영화 찍기에 대한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게 작품 안에서 요소로 드러나기도 하는 듯하다. 무성영화처럼 인터타이틀이 들어간다거나 영사기 소리가 삽입된다거나.
와니: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간자막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장면들을 찍었을 때는 할머니에게 디렉션을 많이 드렸는데 촬영본에는 담기지 않았으니까, 그걸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상황을 설명하는 기능도 있지만 유머 코드를 넣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유머도 가미하게 됐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이치카와 콘 감독에 관해 만든 다큐멘터리 <이치카와 콘 이야기>도 많이 참고했다. 사진, 노랫소리, 간자막을 활용해서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 감동적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Q. 가까운 사람과 촬영을 한다는 게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영자: 나는 절대 복종했다. 영화에 대해선 일자무식이니까. 야단 엄청 맞았다. 야단 좀 피하려고 앨범 내놓고 설명하기 시작하니까 비로소 와니가 조용해졌다. 내가 옛날에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알고 말을 얹겠어. 와 근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소름 끼치게 재밌더라고. 날 데려다가 영화를 찍다니 망쳤다 싶었는데. 이뻐 죽겠어 진짜. 갈등은 못 느꼈다. (정와니 감독을 보고) 너 나 말고 다른 사람으로 배우 바꾸려고 해봤어?
와니: 아니? 할머니랑 나는 워낙 편한 사이긴 하다. 자주 찾아뵙기도 하고.
영자: 우리 둘이가 장난꾸러기들이니까.
와니: “할머니 저 내일 뭐 좀 찍으러 갈게요”하면 “그래” 받아주시고. 설명도 찍으러 가서 했다. “할머니, 잠깐 설거지하는 걸 찍을 텐데 좀 흥얼거리면서 해주세요.” 디렉팅을 하고, 할머니가 연기를 하면 “할머니, 지금 너무 신나 보여” 피드백을 하면서.
영자: 아니, 슬프게 먹으라는데 슬프게 먹는다는 게 대체 뭔지. 입에 들어가면 맛있으니까 오작오작 씹으면서 치아 맞닿는 음을 내놓는단 말이야. 맛있게 먹는다고 야단 맞고, 화분에 물 뿌릴 때 손 힘이 세다고 또 야단 맞고. 찍을 땐 완전 쪽을 못 썼다. 근데 찍고 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

Q. 전체 시나리오를 설명하고 촬영을 시작한 건 아닌가 보다.
와니: 로그라인 정도만 설명했다. ‘경태랑 할머니 데리고 영화 찍을 거예요’ 덧붙이고.
Q. 어떻게 사촌을 배우로 섭외하게 됐나.
와니: 경태는 동갑내기 사촌인데 스무 살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항상 뭐 찍을 때 같이한다. 작년에도 단편 영화를 같이 찍었다. “경태! 이리 와!” 자동이다.
Q. 상영할 때 보니까 화면에 경태 배우가 등장할 때 관객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
와니: 신기한 게 경태한테 얼굴 사진 하나만 보내달라고 했을 뿐인데 경태가 보낸 사진이 진짜 너무 한심하고 할머니를 안 찾아뵐 것 같은 손자처럼 보이는 사진이었다.(웃음) 그래서 옳다구나, 바로 GO했다.
Q.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영화적인 즉흥이나 우연으로 근사하게 완성된 순간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전화기 내려놓는 장면. 촬영 중간에 잠깐 쉬는데 할머니가 친구분이랑 전화를 하시는 거다.
인서트로 찍어두면 좋겠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찍었는데 할머니가 연기를 하시는 거다. 수화기를 그냥 내려놓으면 되는데 탁, 놓으시면서 슬픈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웃음) 또 하나 완전 리얼한 우연은, 영화에 나온 백과사전. 그 사전이 어머니가 너무 두껍고 무겁다고 버리려고 했던 걸 아버지가 버리기 아깝다고 숨겨서 보관해 놨던 거다. 사전을 들고 할머니 댁에 갔더니 할머니가 표지의 저자명을 보시곤 ‘나 결혼식 때 주례 서 주신 분이다’ 말씀하셨다. 인생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고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할머니, 찍을 테니까 방금 그 말씀 한 번만 더 해주세요’ 했다. 영화 속 NG의 향연은 그렇게 탄생했다.
영자: 그게 어떻게 영화가 됐나 궁금해 죽겠어. 석양을 쳐다보는 장면과 그 이후도 그렇다. 집에서 보이는 석양이 참 아름답거든. 그걸 슬픈 표정으로 보고 있으라고 해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더니 어머,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다. 나는 눈이 안 보이는데 와니는 웃고 난리를 치니까, 다시는 내가 너랑 영화 찍어주나 봐라 생각하고 그랬다.
Q. 지금은 어떤가? 정와니 감독이 같이 영화를 찍자고 하면 또 찍으실 마음이 있을까?
와니: 내가 또 찍자고 하면 할머니는 분명히 같이해주실 것 같다.
영자: 그럼 경력이 있어서 더 잘하겠네.
Q. 꼭 가족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영화를 같이 찍는 파트너로서 서로 발견하게 된 장점이 있다면.
와니: 할머니는 나에 대한 의심을 안 하신다. ‘그렇게 해봐’하면 바로 해준다. 내가 어떤 걸 원하는지도 빠르게 캐치하시는 것 같다.
영자: 인생 이렇게 오래 살면 다 알게 되어 있어, 그냥 백과사전 되는 거야.
나도 와니 얜 다르구나, 이번에 많이 느꼈다. 내가 자식도 손자도 많이 길러 봤는데 와니를 보면 소름이 족족 끼쳐. 이렇게 어린데도 상상력이 대단하다. 대성할 거야. 할머니 이 세상에 없어도… (와니: 그런 말 좀 하지 마) 하긴 누가 알아, 100살 넘길지? 만약 그렇게 되면 또 네 파트너가 돼보면 어떨까? 김혜자 같은 배우도 오랫동안 활동하잖아.
Q. 어떤 부분이 시나리오상에 명기되어 있고, 어떤 부분이 현장에서 자연스러운 화학 작용으로 완성됐을지도 궁금했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실 때 부르는 노래 같은 것.
와니: 노래 흥얼거리면서 설거지를 해달라고만 요청드렸다. 할머니가 <매기의 추억> 노래를 정말 좋아하셔서 자연스레 그 곡을 부르시는데 너무 좋았다. 그 노래를 크레딧에까지 쓰게 될줄은 몰랐다.
영자: 그 부분엔 딸이 피아노 반주를 해줬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지금은 외국 나가서 산다. 내 입장에선 딸 연주를 안 멈추고 더 듣고 싶어가지고 계속 불렀던 거다. 이번에 딸네 가족이 정동진에 같이 와가지고 11명이서 영화를 같이 봤다.
Q. 엔딩크레딧을 보면 대부분의 역할을 정와니 감독이 직접 했는데 음악만 성함이 따로 표기되어 있어 누구일지 궁금했다.
와니: 피아노 연주는 고모, 음악감독은 아버지시다.
Q. 엔딩크레딧의 ‘썽꾼이 영화학교’ ‘썽꾼이들’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면 좋겠다.
와니: 썽꾼이 영화학교와 썽꾼이 제작사는 실재하는 건 아니다. 나와 오빠, 사촌 경태가 모두 영화 공부를 해서 우리끼리 만들어본 거다. 서로 사부작사부작 작업을 도와주던 중 ‘우리가 만든 작품들에 이 크레딧이 차곡차곡 쌓이면 재밌지 않을까?’하면서 이름을 지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말썽을 많이 피워서 ‘말썽꾼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Q. 예술가 가족이다. 할머니께서도 배우로 데뷔하셨으니 가족 영화사도 차릴 수 있겠다.
영자: 그럼 좋겠네.
Q. 가족들은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이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일단 나는, 너무 주책맞지만 울었다.(웃음) 경태도 좀 울었고. 울지 않고 그냥 재미있게 본 식구들도 있다. ‘나중에 더 시간이 흘러서 이 영상을 보면 느낌이 어떨까’ 얘기도 하고.

Q. 영화엔 여러 종류의 촬영 기법이나 편집 방식이 등장한다. 흑백 화면이 삽입된다거나, 핸드헬드와 스톱모션이 연결된다거나.
와니: 처음부터 엄청나게 체계적인 계획 아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어서, 일단 찍고 나중에 판단한 부분이 많다. 흑백 장면은 내가 ‘극영화 서글픈 후회’ 찍기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접 개입하는 순간을 차별점 있는 화면으로 보여주고자 선택했다. 할머니와 내가 같이 찍은, 점점 어려지는 사진 몽타주는 촬영할 때만 해도 생각을 못했다. 나중에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하면서(웃음) 할머니와 나의 삶을 더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떠올리게 됐다.
Q. 그 부분을 보면서 느낀 게, 두 분이 엄청 닮았더라. 가족을 찍는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나랑 닮은 사람을 찍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니: 나도 신기했다. 그리고 그 사진 몽타주를 볼 때마다 어린 아기가 되어가는 나보다도 젊어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게 뭉클하더라. 할머니의 인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 스스로도 좋아하는 장면이다.
Q. 영화엔 할머니가 ‘너 이거 몰랐지’ 처럼 과거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촬영하며 이전엔 몰랐는데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거나 막연하게 추측만 하고 있다가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할머니가 되게 명랑하고 긍정적이고 장난기도 많다. 왜 할머니한테 서글픈 후회가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고 찍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그저 할머니를 모시고 찍으면 잘 찍을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우리 할머니가 어떤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앨범을 펼치고 들려주신 돌아가신 친구분 얘기나 결혼생활 얘기는 진짜 그전에는 몰랐던 이야기다.
영자: 옛날에는 씨족사회고, 한 집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지만 지금은 다들 나가서 사니까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면이 있지. 그래서 와니에게 이렇게 가족사를 얘기해 주고, 그걸 통해 또 돈독해지는 걸 느끼며 행복해하고 그런다. 둘이 나가면 난 멀거니 앉아서 있고, 얘는 날 찍고. 그러고 밥 한 끼 먹고 돌아오는 그게 행복이다.
와니: 할머니가 당신 인생 얘길 해주는 걸 되게 즐거워하신다.
영자: 네가 오면 그냥 행복해. 기다려지고.
Q. 영화에서도 ‘사는 맛이 있다’고 하셨다.
영자: 진짜 사는 맛이 나니까. 내 나이 돼봐야 안다!
나이가 많이 들고 보니까 옛날에 지나온 것도 다 좋게 느껴진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딱 흘러 버린다. 그러면 세상이 또 달라 보이거든. 와니는 그냥 앉아 있는 나를 촬영한 것 같겠지만 내 뇌는 항상 마구마구 움직이면서 별별 생각을 한다. 그게 나이 먹는 즐거움이다.
Q. 워낙 재밌는 장면이 많다 보니, 편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탈락한 장면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전반부는 처음 찍으려 했던 극영화용 소스를 활용했고, 후반부는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고 이전에 찍은 소스를 꺼내는 내용이라 뭘 쓸까 말까 고민할 수가 없었다. 소스가 너무 부족해서 버리긴커녕 오히려 있는 소스를 어떻게 활용할까 더 고민했다. 할머니가 국어사전과 이희승 선생님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도 사실 전혀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는 의지로 열심히 편집해서 집어넣었다.
Q. 그럼 만약 당시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촬영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떤 걸 추가하거나 수정하고 싶은지.
와니: 내가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몽타주가 있다. 지하철, 계단, 걸어가는 길, 아파트 복도가 쭉 나열되고 할머니를 마주하는 시퀀스다. 당시엔 소스보다는 리듬감 있게 편집 타이밍을 맞추는 걸 신경 썼는데, 지금 보면 그 시퀀스의 소스가 아쉽다. 지금 영화에 들어간 장면도 여러 번 찍은 거긴 하지만 그렇게 정성스러워 보이지가 않는 거 같다. 그때는 진짜 솔직하고 투박하게 감정을 찍은 거라면 지금은 조금 더 시퀀스를 생각하면서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지금 언급한 시퀀스는 영화에서 꽤 인상적인 부분이다. 지하철 소리가 감정을 환기하는 사운드처럼 들리기도 한다.
와니: 들어보면 어느 역인지 알리는 지하철 방송이 나온다. 할머니 댁 근처 역이라서 내겐 그 방송이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소리 그 자체라 넣었다.
Q. 무지 사소한 질문인데, 방에서 서글픈 표정을 짓고 계실 때 별안간 입고 계신 털 조끼의 정체는 뭘까? 연출의 일부였을까?
와니: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할머니가 당신 누추한데 왜 찍냐면서 입으셨던 것 같다.
영자: 내가 웃기느라고 이 짓 저 짓 다 잘한다. 그래야지 와니가 우리 집을 찾아오거든. 재미있게 친구처럼 해야지.
Q. 사소한 질문 2번도 있다. 처음엔 ‘서글픈 후회’의 주체가 경태라고 했는데 왜 할머니께 할머니의 서글픈 후회가 무엇이냐고 질문한 건지?!
와니: 초반엔 나의 이해도 자체가 낮았던 것 같다. 서글픔을 생각하면 할머니가 떠올라서 할머니를 캐스팅하고, 할머니가 서글프고 경태는 후회하고… 그런 스토리를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거기서부터가 잘못된 것 같다.(웃음)
Q. 영화 말미에 이 영화는 ‘먼 훗날 할머니와 내가 헤어질 때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영화’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우리가 본 <서글픈 후회> 이후에도 이 영화가 계속 이어진다는 건데, 후속 내용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와니: 할머니와 영화제에 온 것. 너무 의미가 깊다. 커다란 스크린에 할머니 얼굴이 가득 나오는 것, 그때 할머니 반응도 계속 카메라로 담아두고 있다. 근데 사실 꼭 특별한 장면이 중요하거나 필요하다기 보단, 할머니랑 투닥투닥 재밌게 추억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영자: 와니는 이제 더 자라야지. 나랑 장난친 것보다 더. 와니는 쑥쑥 클 거야. 내가 알아.
와니: 영화를 찍으면서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앞으로는 영화를 찍는다는 목표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할머니랑 계속 시간을 갖고 싶다. 할머니는 항상 동네 뒷산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고 하신다. 최대한 할머니를 많이 찾아뵙고 좋은 추억을 쌓는 게 앞으로의 여정 아닐까 싶다.
영자: 관객과의 대화 때도 말했듯이 내가 이제 세상 여행을 끝낼 때가 되어간다. 여기서 들은 관객들의 박수 소리하고 그걸 들을 수 있게 해준 와니의 노력, 그거 안고 가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와니: 앞으로도 나랑 봐야지.
영자: 사람 마음대로 안돼. 오늘도 비보를 들었거든. 내가 그런 나이니까, 서로 떠나보내는 나이. 그건 할 수 없는 일이지. 지금 알 수 있는 건 여기 와서 정말 행복하다는 거다. 그 많은 박수를 할머니가 어디 가서 받아보겠어. 더더군다나 손녀가 준 선물이라니. 더이상 할머니는 바랄 거 없어.

Q. 정동진독립영화제 관객 중 적지 않은 숫자가 2030, 할머니 손에 큰 경험이 있는 세대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공감의 목소리도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영자: 상영 끝나고 웬 사람들이 그렇게 나한테 알은체를 하더라. 어떤 분은 친구 둘 데리고 와가지곤 나한테 자기 할머니 사진을 보여주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왜 나한테 감사하다고 하지, 왜 할머니 사진을 날 보여주나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가 깜짝 놀랐다. 왜 내 사진이 저 핸드폰에 가 있나 싶어서. 나랑 옷도 똑같고 나이도 또래이시더라고. 이따 나갈 때 동전 이만~큼 넣고 가겠다고 농담을 하더라. 어제는 해변가에 갔는데 거기서도 누가 날 알아보고, 저녁밥을 먹는데도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선 인사를 했다. 와니한테 할머니 스타 된 거냐, 정동진 빨리 떠야겠다, 무섭다 그랬다.(웃음)
나 젊을 때는 암만 스타를 봐도 자존심이 있어가지고 겉으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순진해서 그런가? 옛날엔 멀리서 몰래 보고, 누가 사인이라도 받으면 ‘야 넌 그런 걸 왜 받냐?’ 타박하고 그랬거든? 진짜 신기하다. 나 이제 큰일났다.
와니: 영화를 보면서 생각보다 너무 많이 웃어주셔서 신기했다. 관객분들 마음이 열려 있단 걸 느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달까. 덕분에 나도 편집하면서 장면장면을 볼 때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
영자: 야외 영화제가 그런 힘이 있구나 싶더라.
Q. 이번 작품은 정와니 감독에게도 새로운 시도였을 것 같다.
와니: 어떤 분들은 작품이 너무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오히려 감정이 온전히 전달돼서 좋았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초반에 기획이 바뀌었기에 작품을 매듭짓는 과정에서의 변화가 담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거기 집중하고자 했다. 관객분들이 잘 받아들여 주셔서 좋았다.
Q. 작품마다 장르는 제각각이지만, 모든 장르를 관통하는 ‘나는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구나’ 깨달음이 있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여전히 좋은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서글픈 후회>를 만들면서 발견한 게 하나 있다. 나는 꾸며냄 없이 진솔한 작품을 만드는 것에 의의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진솔하게, 진중하게 하는 연습을 계속하고 싶다.
Q. 앞으로 영화를 통해 이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와니: 일단은 지금 당장 졸업 학년이라 졸업작품을 쓰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숙제처럼 주어지는, 오해와 오해를 둘러싼 감정들, 그 감정을 소화하고자 하는 노력 등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Q. 두 분은 서글픈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이 있을까?
와니: 실천이 잘 안 되기는 하는데, ‘할머니한테 전화 자주 드리기’처럼 사소한 행동들. 나 바쁜 것만 생각하면 뒤로 미루게 되겠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잘해야 하는 것 같다. 할머니가 계실 때 소홀하지 않는 거.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영자: 근데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더라. 쭉 살아보니까. 난 진짜 서글프게, 별 일 다 해보며 살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손녀딸 꼬물꼬물 다 자라는 거 지켜볼 수 있고 모든 게 다 행복하단 생각만 든다. 와니랑 만나면 서로 좋아서 웃고, 헤어질 때는 ‘내일 올래 안 올래?’ 장난으로 물어보면서. 그러니까 처음엔 와니가 나한테 서글픔 같은 걸 느꼈어도 같이 있으면서 점점 그 느낌이 없어졌을 거다. 그치? 영화가 뭔지도 모르고 할 수 있는대로 하다가 보니까 서글픈 게 없어졌지. 그런 거다. 세상만사 간단하게 생각해.
Q. 서글픔은 마음의 문제인 건가보다.
영자: 처음엔 그래서 ‘왜 서글픔을 줘야 되는데? 왜 꼭 이래야 돼? 난 이런 거 되게 싫어하는데’ 하면서 내가 막 엇나갔다. 그랬더니 와니한테 야단 맞고, NG NG 어쩌고 저쩌고… 그래봤자다. 속으로 ‘옛날에는 필름값이 비쌌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 필요도 없는데 뭔 상관?’ 이러고 시시덕거렸거든. 결국 와니도 같이 웃었다. 그러니까 서글픈 감정이 나오겠나? 처음에는 붙잡아보려 했겠지만, 결국 내가 빠져나가 버렸지. 결과적으로 할머니는 서글픈 거 없어. 세상 잘 살아왔다고. 옛날에 성철 스님이 ‘이뭐꼬’ 그러셨잖아. 이게 무엇이길래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나 생각해 보라고. 그거를 항상 마음에 새겨두면 슬픈 것도 없고 괴로운 것도 없고 다 없어. 그렇다고 할머니가 부처는 아니야!(같이 웃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장난하면서 논다. 그러다 보면 와니도 마음속에 가져가는 게 있을 거거든.
그러니까 나는 안 서글퍼. 그 많은 관객의 박수를 어디 가서 받아 보겠나.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했을 때도 박수 좀 받는구나 했는데, 정동진에선 생각지도 못한 단체 박수가 터져나왔다. 관객과의 대화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도 말도 못하게 붙잡혀서 인사를 받았다. 그래가지고 참 세상이 이렇게 좋구나, 나 더 살고 싶어, 그랬다.
와니: 더 살아요. 할머니 마음대로 해.
영자: 진짜 정동진독립영화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는 와니랑 재밌게 장난친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영화제에 오다니. 우리는 싸우지도 않고 웃고만 했잖니. 참 재밌게 찍었어. 너무 재밌게. 이런 거라면 해볼 만하다 싶었지. 할머니가 육십만 됐어도 너한테 들이대면서 영화사 하나 하자고 했을 거야. 둘이서 하면 뭐가 안 되겠니, 까짓 거 뭐 별거냐? 안 그래?
인터뷰 / 김송요
사진 / 강태욱
인터뷰는 질답을 고스란히 옮기는 일이라지만, 정리 과정에서 같은 단어가 반복해 사용되는 것이 신경 쓰여 유의어로 대체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인터뷰에선 한 가지 단어를 도무지 대체하지 못하고 마냥 반복해서 썼다. 그건 바로, ‘행복’
Q. 이 작품을 맨 처음 봤을 때 많이들 궁금해하는 건 “진짜 무작위로 선택한 두 단어로, 영화에 드러난 흐름 그대로 촬영된 걸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이고 연출된 것일까?”일 것 같다.
정와니 감독(이하 ‘와니’): 두 단어를 조합하여 영상을 만드는 수업이 있었다. 그때 사전을 펼쳐 나온 페이지에서 서글픔이라는 단어와 후회라는 단어를 꺼내어 만들게 됐다. 솔직히 서글픔, 후회라는 단어에 근접하고자 사전을 좀 여러 번 펼치긴 했다.(웃음) 완전히 인위적으로 연출된 장면은 아니지만, 서글픔이라는 감정을 다루려는 마음은 은연중 갖고 있었다.
구영자 배우(이하 ‘영자’): 조금 보충하자면, 촬영을 할 때가 코로나가 막 돌던 시기다. 와니가 나랑 친하니까, 내가 혼자 외롭게 사는 게 어린 가슴에 사무쳤던 것 같다. 나한테서 후회하는 기색을 느꼈을 것도 같고, 아유 눈물 나. 더불어서 영화 앞부분에 보면 사전에다가 꽃을 딱 올려놓고 찍지 않았나. 내가 화초를 열심히 기르고 사랑을 주는데 와니가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 아닌가 싶다.
Q. 그것도 궁금했다. 첫 장면에 사전 옆으로 풀꽃을 드리운 것. 누구 솜씨일까 싶었다.
영자: 와니! 쟤가 아무래도 뭐가 되긴 되겠구나 싶더라고.
하나 더 덧붙이고 싶다. 와니가 4학년 때인데, 애 아버지 부탁으로 창덕궁 근처에서 와니를 봐준 적이 있다. 시간이 늦어서 창덕궁은 못 가고, 근처 흥선대원군 살던 운현궁이 있어가지고 거길 같이 갔다. 근데 애가 들어가자마자 벌떡 누워버리는 거다. 어디 아픈가 싶어서 화들짝 놀란 와중에 애가 또박또박 그러는 거다. “할머니, 지붕의 문양을 찍으려면 누워서 찍어야죠”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 돋는다. 그때부터 크게 될 놈인가 보다 했지.
와니: 아니…! (하지만 구영자 배우는 멈추지 않았다)
영자: 4학년짜리가 자기 아버지가 준 낡은 카메라 하나 목에 걸고 돌아다녔거든. 그러곤 와니를 자주 불러서 놀았다. 조계사 같은 데 데리고 가면 와니는 거기서 또 사진을 찍었지. 거기 겨울엔 국화빵이 또 와따야.
Q. 돌아가서, ‘할머니를 캐스팅한 픽션 영화를 만들겠다’는 기획 자체가 진짜였는지도 궁금했다. 작품의 논리적 전개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현재의 결과물에 도달하기 위한 장치일까 싶기도 했다.
와니: 실제 작업 흐름이다. 서글픔이랑 후회라는 단어를 가지고 극영화를 찍으려고 했고, 서글픔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잘 안 와닿아서 누가 그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인생 경험이 많은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렇게 로그라인을 뽑고 경태한테도 ‘다음주에 촬영할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라’ 전화를 했다. 1회차에 할머니를 찍고 2, 3회차에 경태를 찍기로 했는데, 할머니 촬영본을 열어 보니까 내가 할머니에게서 너무 억지로 서글픔을 끌어내려고 하는 게 느껴지더라. 뭔가가 잘못됐단 걸 깨닫고 지금의 방향성을 가져가게 됐다. 이 생각을 다큐멘터리로 다 담아보자 하면서. 할머니를 그저 나의 시선에서 바라봤던, 실제 할머니의 삶이 어땠는지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첫 단계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분들이 내가 느낀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실제로 완성된 <서글픈 후회>는 어떤 면에선 영화 찍기에 대한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게 작품 안에서 요소로 드러나기도 하는 듯하다. 무성영화처럼 인터타이틀이 들어간다거나 영사기 소리가 삽입된다거나.
와니: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간자막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장면들을 찍었을 때는 할머니에게 디렉션을 많이 드렸는데 촬영본에는 담기지 않았으니까, 그걸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상황을 설명하는 기능도 있지만 유머 코드를 넣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유머도 가미하게 됐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이치카와 콘 감독에 관해 만든 다큐멘터리 <이치카와 콘 이야기>도 많이 참고했다. 사진, 노랫소리, 간자막을 활용해서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 감동적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Q. 가까운 사람과 촬영을 한다는 게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영자: 나는 절대 복종했다. 영화에 대해선 일자무식이니까. 야단 엄청 맞았다. 야단 좀 피하려고 앨범 내놓고 설명하기 시작하니까 비로소 와니가 조용해졌다. 내가 옛날에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알고 말을 얹겠어. 와 근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소름 끼치게 재밌더라고. 날 데려다가 영화를 찍다니 망쳤다 싶었는데. 이뻐 죽겠어 진짜. 갈등은 못 느꼈다. (정와니 감독을 보고) 너 나 말고 다른 사람으로 배우 바꾸려고 해봤어?
와니: 아니? 할머니랑 나는 워낙 편한 사이긴 하다. 자주 찾아뵙기도 하고.
영자: 우리 둘이가 장난꾸러기들이니까.
와니: “할머니 저 내일 뭐 좀 찍으러 갈게요”하면 “그래” 받아주시고. 설명도 찍으러 가서 했다. “할머니, 잠깐 설거지하는 걸 찍을 텐데 좀 흥얼거리면서 해주세요.” 디렉팅을 하고, 할머니가 연기를 하면 “할머니, 지금 너무 신나 보여” 피드백을 하면서.
영자: 아니, 슬프게 먹으라는데 슬프게 먹는다는 게 대체 뭔지. 입에 들어가면 맛있으니까 오작오작 씹으면서 치아 맞닿는 음을 내놓는단 말이야. 맛있게 먹는다고 야단 맞고, 화분에 물 뿌릴 때 손 힘이 세다고 또 야단 맞고. 찍을 땐 완전 쪽을 못 썼다. 근데 찍고 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
Q. 전체 시나리오를 설명하고 촬영을 시작한 건 아닌가 보다.
와니: 로그라인 정도만 설명했다. ‘경태랑 할머니 데리고 영화 찍을 거예요’ 덧붙이고.
Q. 어떻게 사촌을 배우로 섭외하게 됐나.
와니: 경태는 동갑내기 사촌인데 스무 살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항상 뭐 찍을 때 같이한다. 작년에도 단편 영화를 같이 찍었다. “경태! 이리 와!” 자동이다.
Q. 상영할 때 보니까 화면에 경태 배우가 등장할 때 관객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
와니: 신기한 게 경태한테 얼굴 사진 하나만 보내달라고 했을 뿐인데 경태가 보낸 사진이 진짜 너무 한심하고 할머니를 안 찾아뵐 것 같은 손자처럼 보이는 사진이었다.(웃음) 그래서 옳다구나, 바로 GO했다.
Q.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영화적인 즉흥이나 우연으로 근사하게 완성된 순간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전화기 내려놓는 장면. 촬영 중간에 잠깐 쉬는데 할머니가 친구분이랑 전화를 하시는 거다.
인서트로 찍어두면 좋겠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찍었는데 할머니가 연기를 하시는 거다. 수화기를 그냥 내려놓으면 되는데 탁, 놓으시면서 슬픈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웃음) 또 하나 완전 리얼한 우연은, 영화에 나온 백과사전. 그 사전이 어머니가 너무 두껍고 무겁다고 버리려고 했던 걸 아버지가 버리기 아깝다고 숨겨서 보관해 놨던 거다. 사전을 들고 할머니 댁에 갔더니 할머니가 표지의 저자명을 보시곤 ‘나 결혼식 때 주례 서 주신 분이다’ 말씀하셨다. 인생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고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할머니, 찍을 테니까 방금 그 말씀 한 번만 더 해주세요’ 했다. 영화 속 NG의 향연은 그렇게 탄생했다.
영자: 그게 어떻게 영화가 됐나 궁금해 죽겠어. 석양을 쳐다보는 장면과 그 이후도 그렇다. 집에서 보이는 석양이 참 아름답거든. 그걸 슬픈 표정으로 보고 있으라고 해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더니 어머,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다. 나는 눈이 안 보이는데 와니는 웃고 난리를 치니까, 다시는 내가 너랑 영화 찍어주나 봐라 생각하고 그랬다.
Q. 지금은 어떤가? 정와니 감독이 같이 영화를 찍자고 하면 또 찍으실 마음이 있을까?
와니: 내가 또 찍자고 하면 할머니는 분명히 같이해주실 것 같다.
영자: 그럼 경력이 있어서 더 잘하겠네.
Q. 꼭 가족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영화를 같이 찍는 파트너로서 서로 발견하게 된 장점이 있다면.
와니: 할머니는 나에 대한 의심을 안 하신다. ‘그렇게 해봐’하면 바로 해준다. 내가 어떤 걸 원하는지도 빠르게 캐치하시는 것 같다.
영자: 인생 이렇게 오래 살면 다 알게 되어 있어, 그냥 백과사전 되는 거야.
나도 와니 얜 다르구나, 이번에 많이 느꼈다. 내가 자식도 손자도 많이 길러 봤는데 와니를 보면 소름이 족족 끼쳐. 이렇게 어린데도 상상력이 대단하다. 대성할 거야. 할머니 이 세상에 없어도… (와니: 그런 말 좀 하지 마) 하긴 누가 알아, 100살 넘길지? 만약 그렇게 되면 또 네 파트너가 돼보면 어떨까? 김혜자 같은 배우도 오랫동안 활동하잖아.
Q. 어떤 부분이 시나리오상에 명기되어 있고, 어떤 부분이 현장에서 자연스러운 화학 작용으로 완성됐을지도 궁금했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실 때 부르는 노래 같은 것.
와니: 노래 흥얼거리면서 설거지를 해달라고만 요청드렸다. 할머니가 <매기의 추억> 노래를 정말 좋아하셔서 자연스레 그 곡을 부르시는데 너무 좋았다. 그 노래를 크레딧에까지 쓰게 될줄은 몰랐다.
영자: 그 부분엔 딸이 피아노 반주를 해줬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지금은 외국 나가서 산다. 내 입장에선 딸 연주를 안 멈추고 더 듣고 싶어가지고 계속 불렀던 거다. 이번에 딸네 가족이 정동진에 같이 와가지고 11명이서 영화를 같이 봤다.
Q. 엔딩크레딧을 보면 대부분의 역할을 정와니 감독이 직접 했는데 음악만 성함이 따로 표기되어 있어 누구일지 궁금했다.
와니: 피아노 연주는 고모, 음악감독은 아버지시다.
Q. 엔딩크레딧의 ‘썽꾼이 영화학교’ ‘썽꾼이들’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면 좋겠다.
와니: 썽꾼이 영화학교와 썽꾼이 제작사는 실재하는 건 아니다. 나와 오빠, 사촌 경태가 모두 영화 공부를 해서 우리끼리 만들어본 거다. 서로 사부작사부작 작업을 도와주던 중 ‘우리가 만든 작품들에 이 크레딧이 차곡차곡 쌓이면 재밌지 않을까?’하면서 이름을 지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말썽을 많이 피워서 ‘말썽꾼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Q. 예술가 가족이다. 할머니께서도 배우로 데뷔하셨으니 가족 영화사도 차릴 수 있겠다.
영자: 그럼 좋겠네.
Q. 가족들은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이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일단 나는, 너무 주책맞지만 울었다.(웃음) 경태도 좀 울었고. 울지 않고 그냥 재미있게 본 식구들도 있다. ‘나중에 더 시간이 흘러서 이 영상을 보면 느낌이 어떨까’ 얘기도 하고.
Q. 영화엔 여러 종류의 촬영 기법이나 편집 방식이 등장한다. 흑백 화면이 삽입된다거나, 핸드헬드와 스톱모션이 연결된다거나.
와니: 처음부터 엄청나게 체계적인 계획 아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어서, 일단 찍고 나중에 판단한 부분이 많다. 흑백 장면은 내가 ‘극영화 서글픈 후회’ 찍기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접 개입하는 순간을 차별점 있는 화면으로 보여주고자 선택했다. 할머니와 내가 같이 찍은, 점점 어려지는 사진 몽타주는 촬영할 때만 해도 생각을 못했다. 나중에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하면서(웃음) 할머니와 나의 삶을 더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떠올리게 됐다.
Q. 그 부분을 보면서 느낀 게, 두 분이 엄청 닮았더라. 가족을 찍는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나랑 닮은 사람을 찍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니: 나도 신기했다. 그리고 그 사진 몽타주를 볼 때마다 어린 아기가 되어가는 나보다도 젊어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게 뭉클하더라. 할머니의 인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 스스로도 좋아하는 장면이다.
Q. 영화엔 할머니가 ‘너 이거 몰랐지’ 처럼 과거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촬영하며 이전엔 몰랐는데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거나 막연하게 추측만 하고 있다가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할머니가 되게 명랑하고 긍정적이고 장난기도 많다. 왜 할머니한테 서글픈 후회가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고 찍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그저 할머니를 모시고 찍으면 잘 찍을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우리 할머니가 어떤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앨범을 펼치고 들려주신 돌아가신 친구분 얘기나 결혼생활 얘기는 진짜 그전에는 몰랐던 이야기다.
영자: 옛날에는 씨족사회고, 한 집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지만 지금은 다들 나가서 사니까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면이 있지. 그래서 와니에게 이렇게 가족사를 얘기해 주고, 그걸 통해 또 돈독해지는 걸 느끼며 행복해하고 그런다. 둘이 나가면 난 멀거니 앉아서 있고, 얘는 날 찍고. 그러고 밥 한 끼 먹고 돌아오는 그게 행복이다.
와니: 할머니가 당신 인생 얘길 해주는 걸 되게 즐거워하신다.
영자: 네가 오면 그냥 행복해. 기다려지고.
Q. 영화에서도 ‘사는 맛이 있다’고 하셨다.
영자: 진짜 사는 맛이 나니까. 내 나이 돼봐야 안다!
나이가 많이 들고 보니까 옛날에 지나온 것도 다 좋게 느껴진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딱 흘러 버린다. 그러면 세상이 또 달라 보이거든. 와니는 그냥 앉아 있는 나를 촬영한 것 같겠지만 내 뇌는 항상 마구마구 움직이면서 별별 생각을 한다. 그게 나이 먹는 즐거움이다.
Q. 워낙 재밌는 장면이 많다 보니, 편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탈락한 장면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전반부는 처음 찍으려 했던 극영화용 소스를 활용했고, 후반부는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고 이전에 찍은 소스를 꺼내는 내용이라 뭘 쓸까 말까 고민할 수가 없었다. 소스가 너무 부족해서 버리긴커녕 오히려 있는 소스를 어떻게 활용할까 더 고민했다. 할머니가 국어사전과 이희승 선생님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도 사실 전혀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는 의지로 열심히 편집해서 집어넣었다.
Q. 그럼 만약 당시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촬영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떤 걸 추가하거나 수정하고 싶은지.
와니: 내가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몽타주가 있다. 지하철, 계단, 걸어가는 길, 아파트 복도가 쭉 나열되고 할머니를 마주하는 시퀀스다. 당시엔 소스보다는 리듬감 있게 편집 타이밍을 맞추는 걸 신경 썼는데, 지금 보면 그 시퀀스의 소스가 아쉽다. 지금 영화에 들어간 장면도 여러 번 찍은 거긴 하지만 그렇게 정성스러워 보이지가 않는 거 같다. 그때는 진짜 솔직하고 투박하게 감정을 찍은 거라면 지금은 조금 더 시퀀스를 생각하면서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지금 언급한 시퀀스는 영화에서 꽤 인상적인 부분이다. 지하철 소리가 감정을 환기하는 사운드처럼 들리기도 한다.
와니: 들어보면 어느 역인지 알리는 지하철 방송이 나온다. 할머니 댁 근처 역이라서 내겐 그 방송이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소리 그 자체라 넣었다.
Q. 무지 사소한 질문인데, 방에서 서글픈 표정을 짓고 계실 때 별안간 입고 계신 털 조끼의 정체는 뭘까? 연출의 일부였을까?
와니: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할머니가 당신 누추한데 왜 찍냐면서 입으셨던 것 같다.
영자: 내가 웃기느라고 이 짓 저 짓 다 잘한다. 그래야지 와니가 우리 집을 찾아오거든. 재미있게 친구처럼 해야지.
Q. 사소한 질문 2번도 있다. 처음엔 ‘서글픈 후회’의 주체가 경태라고 했는데 왜 할머니께 할머니의 서글픈 후회가 무엇이냐고 질문한 건지?!
와니: 초반엔 나의 이해도 자체가 낮았던 것 같다. 서글픔을 생각하면 할머니가 떠올라서 할머니를 캐스팅하고, 할머니가 서글프고 경태는 후회하고… 그런 스토리를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거기서부터가 잘못된 것 같다.(웃음)
Q. 영화 말미에 이 영화는 ‘먼 훗날 할머니와 내가 헤어질 때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영화’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우리가 본 <서글픈 후회> 이후에도 이 영화가 계속 이어진다는 건데, 후속 내용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와니: 할머니와 영화제에 온 것. 너무 의미가 깊다. 커다란 스크린에 할머니 얼굴이 가득 나오는 것, 그때 할머니 반응도 계속 카메라로 담아두고 있다. 근데 사실 꼭 특별한 장면이 중요하거나 필요하다기 보단, 할머니랑 투닥투닥 재밌게 추억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영자: 와니는 이제 더 자라야지. 나랑 장난친 것보다 더. 와니는 쑥쑥 클 거야. 내가 알아.
와니: 영화를 찍으면서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앞으로는 영화를 찍는다는 목표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할머니랑 계속 시간을 갖고 싶다. 할머니는 항상 동네 뒷산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고 하신다. 최대한 할머니를 많이 찾아뵙고 좋은 추억을 쌓는 게 앞으로의 여정 아닐까 싶다.
영자: 관객과의 대화 때도 말했듯이 내가 이제 세상 여행을 끝낼 때가 되어간다. 여기서 들은 관객들의 박수 소리하고 그걸 들을 수 있게 해준 와니의 노력, 그거 안고 가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와니: 앞으로도 나랑 봐야지.
영자: 사람 마음대로 안돼. 오늘도 비보를 들었거든. 내가 그런 나이니까, 서로 떠나보내는 나이. 그건 할 수 없는 일이지. 지금 알 수 있는 건 여기 와서 정말 행복하다는 거다. 그 많은 박수를 할머니가 어디 가서 받아보겠어. 더더군다나 손녀가 준 선물이라니. 더이상 할머니는 바랄 거 없어.
Q. 정동진독립영화제 관객 중 적지 않은 숫자가 2030, 할머니 손에 큰 경험이 있는 세대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공감의 목소리도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영자: 상영 끝나고 웬 사람들이 그렇게 나한테 알은체를 하더라. 어떤 분은 친구 둘 데리고 와가지곤 나한테 자기 할머니 사진을 보여주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왜 나한테 감사하다고 하지, 왜 할머니 사진을 날 보여주나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가 깜짝 놀랐다. 왜 내 사진이 저 핸드폰에 가 있나 싶어서. 나랑 옷도 똑같고 나이도 또래이시더라고. 이따 나갈 때 동전 이만~큼 넣고 가겠다고 농담을 하더라. 어제는 해변가에 갔는데 거기서도 누가 날 알아보고, 저녁밥을 먹는데도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선 인사를 했다. 와니한테 할머니 스타 된 거냐, 정동진 빨리 떠야겠다, 무섭다 그랬다.(웃음)
나 젊을 때는 암만 스타를 봐도 자존심이 있어가지고 겉으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순진해서 그런가? 옛날엔 멀리서 몰래 보고, 누가 사인이라도 받으면 ‘야 넌 그런 걸 왜 받냐?’ 타박하고 그랬거든? 진짜 신기하다. 나 이제 큰일났다.
와니: 영화를 보면서 생각보다 너무 많이 웃어주셔서 신기했다. 관객분들 마음이 열려 있단 걸 느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달까. 덕분에 나도 편집하면서 장면장면을 볼 때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
영자: 야외 영화제가 그런 힘이 있구나 싶더라.
Q. 이번 작품은 정와니 감독에게도 새로운 시도였을 것 같다.
와니: 어떤 분들은 작품이 너무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오히려 감정이 온전히 전달돼서 좋았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초반에 기획이 바뀌었기에 작품을 매듭짓는 과정에서의 변화가 담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거기 집중하고자 했다. 관객분들이 잘 받아들여 주셔서 좋았다.
Q. 작품마다 장르는 제각각이지만, 모든 장르를 관통하는 ‘나는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구나’ 깨달음이 있었을지도 궁금하다.
와니: 여전히 좋은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서글픈 후회>를 만들면서 발견한 게 하나 있다. 나는 꾸며냄 없이 진솔한 작품을 만드는 것에 의의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진솔하게, 진중하게 하는 연습을 계속하고 싶다.
Q. 앞으로 영화를 통해 이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와니: 일단은 지금 당장 졸업 학년이라 졸업작품을 쓰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숙제처럼 주어지는, 오해와 오해를 둘러싼 감정들, 그 감정을 소화하고자 하는 노력 등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Q. 두 분은 서글픈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이 있을까?
와니: 실천이 잘 안 되기는 하는데, ‘할머니한테 전화 자주 드리기’처럼 사소한 행동들. 나 바쁜 것만 생각하면 뒤로 미루게 되겠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잘해야 하는 것 같다. 할머니가 계실 때 소홀하지 않는 거.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영자: 근데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더라. 쭉 살아보니까. 난 진짜 서글프게, 별 일 다 해보며 살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손녀딸 꼬물꼬물 다 자라는 거 지켜볼 수 있고 모든 게 다 행복하단 생각만 든다. 와니랑 만나면 서로 좋아서 웃고, 헤어질 때는 ‘내일 올래 안 올래?’ 장난으로 물어보면서. 그러니까 처음엔 와니가 나한테 서글픔 같은 걸 느꼈어도 같이 있으면서 점점 그 느낌이 없어졌을 거다. 그치? 영화가 뭔지도 모르고 할 수 있는대로 하다가 보니까 서글픈 게 없어졌지. 그런 거다. 세상만사 간단하게 생각해.
Q. 서글픔은 마음의 문제인 건가보다.
영자: 처음엔 그래서 ‘왜 서글픔을 줘야 되는데? 왜 꼭 이래야 돼? 난 이런 거 되게 싫어하는데’ 하면서 내가 막 엇나갔다. 그랬더니 와니한테 야단 맞고, NG NG 어쩌고 저쩌고… 그래봤자다. 속으로 ‘옛날에는 필름값이 비쌌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 필요도 없는데 뭔 상관?’ 이러고 시시덕거렸거든. 결국 와니도 같이 웃었다. 그러니까 서글픈 감정이 나오겠나? 처음에는 붙잡아보려 했겠지만, 결국 내가 빠져나가 버렸지. 결과적으로 할머니는 서글픈 거 없어. 세상 잘 살아왔다고. 옛날에 성철 스님이 ‘이뭐꼬’ 그러셨잖아. 이게 무엇이길래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나 생각해 보라고. 그거를 항상 마음에 새겨두면 슬픈 것도 없고 괴로운 것도 없고 다 없어. 그렇다고 할머니가 부처는 아니야!(같이 웃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장난하면서 논다. 그러다 보면 와니도 마음속에 가져가는 게 있을 거거든.
그러니까 나는 안 서글퍼. 그 많은 관객의 박수를 어디 가서 받아 보겠나.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했을 때도 박수 좀 받는구나 했는데, 정동진에선 생각지도 못한 단체 박수가 터져나왔다. 관객과의 대화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도 말도 못하게 붙잡혀서 인사를 받았다. 그래가지고 참 세상이 이렇게 좋구나, 나 더 살고 싶어, 그랬다.
와니: 더 살아요. 할머니 마음대로 해.
영자: 진짜 정동진독립영화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는 와니랑 재밌게 장난친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영화제에 오다니. 우리는 싸우지도 않고 웃고만 했잖니. 참 재밌게 찍었어. 너무 재밌게. 이런 거라면 해볼 만하다 싶었지. 할머니가 육십만 됐어도 너한테 들이대면서 영화사 하나 하자고 했을 거야. 둘이서 하면 뭐가 안 되겠니, 까짓 거 뭐 별거냐? 안 그래?
인터뷰 / 김송요
사진 / 강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