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바퀴벌레 돼도 키울 거야?” 한동안 메신저 채팅방을 지배하던 문구 대신에 <얼음땡>이 던지는 질문, “딸, 엄마가 눈사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위예원 감독은 본인의 답변을 유예하거나 모호하게 두는 대신 용감하게 밀어붙인다. 설령 모두가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는 지금 질문에 대한 정답을 세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터널의 양 끝 사이에서 취하고자 하는 태도를 마련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Q. 작품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마음속에 오래 있던 이야기다. 재수생 시절 겨울에 수업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데 눈이 쌓여있는 거다. 갑작스럽게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서 친구랑 한 3~4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어머니랑 같이 온 어린 아이도, 무뚝뚝해 보이는 남성분도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발길을 못 떼는 모습을 봤다. 어떤 아주머니께선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해, 냉장고에라도 넣어놔야 되는 거 아니야?’ 내게 말을 걸기도 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거기가 평소 자주 걸어다니는 공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은 분명 녹아서 초라하게 뒹구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았다. 일순간 추한 꼴을 보이기 전에 내 손으로 망가뜨려야겠다, 내 손을 다 부셔버리고 가야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하는 맘이 스쳤다. 눈사람을 예뻐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파괴적인 욕구를 참고 집에 겨우 들어왔다. 그러면서 ‘눈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사람 모양의 눈뭉치일 뿐인데 나랑 유대감이 생긴 존재. 그때부터 언젠가는 눈사람이 주연인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마음에 담아뒀다가, 첫 작품이 끝나고 그 생각을 다시 끄집어냈다. 두 번째 작품이란 건, 나를 영화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 한 편을 찍은 걸로 ‘영화하는 사람’이라고 불리지는 않는 것 같아서. 조바심을 느끼던 와중 눈사람이란 소재가 다시 떠올랐고, 만약 눈사람이 우리 엄마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랬더니 너무 슬픈 거다. 내가 진짜 눈물이 없는데 눈물이 다 났다. 날 울릴 정도면 사람들도 울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봐도 될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들떠서 잠을 잘 못 잤다. 일어나서 엄마한테 만약 내가 눈사람이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다가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우리 모녀가 그런 사이가 아닌데! 그 경험들 덕에 ‘이건 되는 주식’ 생각하면서 시작했다.
Q. 본인을 설득할 수 있는 소재였나 보다. 1일차 GV에서 들었을 땐 눈사람을 만들었을 때 느낀 차가움이나 부피감, 즉 일종의 물성이 주는 충격에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맞다. 손이 너무 시렵더라. 초기 컨셉엔 눈사람처럼 손발이 찬, 수족냉증 캐릭터가 있었다. 근원적으로는 ‘눈사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데서 파생된 아이디어였다.
Q. 비슷한 표현이 영화에도 나온다. 짠돌이가 어머니를 따뜻한 물로 목욕시켜 드리면 어떻겠냐고 하는 대사가 그렇다. 사랑하는 존재를 따뜻하게 해주고 싶지만 그로 인해 파괴하고 마는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얼음땡>은 한 장면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보늬가 엄마를 놓아주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폭력, 점점 냉장고 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엄마. 그 이미지의 교차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짠돌이의 목욕 언급은 내 의도대로 완전히 전달되진 않았다. 원래는 진짜로 엄마를 소금 속에 넣으면 엄마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해결책을 심어두려는 거였다. 어떻게 보면 안락사도 치료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참다가 하게 되는 선택인 거니까. 사실 대안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 이 영화가 공정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Q. 마지막에 보늬가 주방 찬장의 천일염을 쳐다보는 것도 그걸 암시하는 맥락일까.
패키지에 적힌 소금의 효능에 기억력이 좋아지고 피가 맑아지고… 얼었던 눈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글귀를 넣어 보여주려 했다. 근데 촬영기간이 딱 하루였어서, 그 인서트 자체를 못 땄다.
Q. 그럼 지금은 어떤지? 만약 추가 촬영과 편집을 할 여유가 생긴다면 그 인서트를 넣고 싶나?
그래도 지금이 완성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이후로 내가 많이 바뀌었다. 사실 이 작품은 자랑스럽기보다 부끄러운 점이 더 많다. 배급사에서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됐다고 전화를 받았는데, 유명한 지현우 배우 대상 수상 장면처럼 어리둥절해했다.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왜지?’ 상태였다. 그럼에도 다시는 못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면에선 그땐 뭘 몰랐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던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눈사람을 주연으로 세우는 무모한 짓은 못할 것 같다.
Q. 그럼에도 ‘이 부분은 마음에 든다’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미 완성된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 역시 함께 공유해주시면 귀기울여 듣겠다.
일단 아쉬운 부분은 후반에 짠돌이와 보늬가 서로 갈등하는 장면. 이 영화가 사회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학교 지원을 받고 만든 거여서 대립을 가시화했던 건데, 영화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대로 자랑스러운 부분은, 영화에 나만 아는 미술 요소가 있다. 이를테면 부엌의 싹 난 감자. 싹 난 감자가 정겨운 집의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미술감독에게 어떻게든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신발장에 붙여둔 보늬의 어릴적 태권도 하는 사진도 그렇다. 보늬 연령대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익숙하고 가정적인 장면이 그런 데 있다고 생각했다. 사소하지만 마음에 닿는 부분들이 만족스럽다.

Q. 엄마 눈사람 디자인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엄마 눈사람은 눈이 특이하다. 단추 같은 형태가 아니라 진짜 사람 눈처럼 생겼다. 눈동자 움직임을 통해 보늬와 소통하기도 한다.
만약 전형적인 눈사람의 모습이라면 관객이 ‘혹시 이게 다 보늬의 상상일까’ 의심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외형으로 충분히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고한 게 <판의 미로>에 나오는, 손에 눈이 달린 유명한 괴물이었다. 다만 그렇게 만들어놓고 보니 배우들이 무서워하는 거다.(웃음) 이 영화 자체의 톤이 부드럽지 않나. 색감도 글로우하고. 만약 눈사람이 그저 귀여운 모양새라면 영화가 전체적으로 플랫하고 매력 없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눈사람만큼은 좀 이해하고 가달라고 설득했다.
Q. 영화의 미술에 재미난 요소들이 많은 것 같다. 엄마가 볼 수 있도록 냉장고 안쪽으로 붙어 있는 보늬의 사진도 그렇고, 보늬가 읽는 <냉기제거 반신욕> 책이나 창문에 달린 테루테루보즈도 그렇고.
촬영 당시 보늬가 노력하고 있단 걸 미술 소품으로 설명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서적을 통해선 보늬가 연구를 많이 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테루테루보즈 같은 경우는, 사람이 현대의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치의 상태에선 온갖 걸 다 해보게 될 거라 생각했다. 보늬가 하다하다 테루테루보즈에게 비는 지경까지 갔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일몰에 비친 테루테루보즈를 화면에 담고 싶었다. 보늬는 엄마와 함께하는 것을 염원하지만 이들의 시간은 점점 끝나가는 걸 암시하고 싶었다. 일몰이라는 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사람은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걸 막아보고 싶어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슬픈 이미지이기도 하다.
Q. 어린이 사진은… 본인의 어린 시절일까?!
나는 그렇게 귀엽지 않았다.(웃음) 박정인 배우에게 받은 사진을 출력해서 붙였다.
Q. 캐릭터에 대해 얘기하자면, 짠돌이는 어린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몹시 외부자적인 입장으로 느껴진다.
엄마가 할머니를 간병했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자기가 돌봄노동의 주체가 아닌 입장에서 관조적으로 하는 말이고, 보늬에게 하는 말도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린다. 근데 실은 짠돌이가 답을 알고 있었다니! 위예원 감독이 생각한 이 인물의 역할이랄지 기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우선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안락사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부딪치는. 논리적으로 틀린 건 아니다.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는데, ‘삼시세끼 꼬박꼬박 야채 위주로 드시고 운동하시면 건강해집니다’가 틀린 말이 아닌 건 다들 알지만, 그게 꼭 행복한 삶의 방식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덧붙이자면 짠돌이란 이름 자체가 소금의 상징이다. 그리고 보늬는 결국 엄마를 소금 목욕시키지 않는다.
짠돌이는 엄마와 보늬 사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으면서 함부로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포인트 중에 하나가, 짠돌이가 보늬에게 조언 내지는 잔소리를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가면서 하는 말이 ‘수행평가 때문’이란 거다. 그게 정말 얄팍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안락사 반대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표현한 걸 수도 있고.
짠돌이의 세 번째 역할은, 엄마가 떠난 뒤 새로운 희망이 필요한 보늬 곁에 있어줄 존재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끼리 챙겨주고, 응원해주고, 좋아해주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Q. 개인적으로는 소금이 해결책이라는 게 노출되지 않아서 더 좋다. 지금 완성본에선 짠돌이가 제시하는 대책이 약간 대체의학처럼 들리고 못미더운 점이 재미를 주는 것 같기도 해서.
그리고 그게 알려졌으면 내가 GV 때 토마토나 달걀 맞았을 것 같다.(웃음) 결과적으론 여러모로 운이 따라준 것 같다.
Q. 짠돌이는 이름에서 소금이 연상되는, 애초에 어떤 개념을 인간화한 존재 같기도 하다. 반면 보늬, ‘설보늬’는 상징적이긴 해도 사람 이름이다.
작명이 너무 어렵다! 강아지를 키웠는데 이름이 ‘아지’였다. 누가 ‘왜 이렇게 이름을 못 지어?’하면 항상 이 에피소드로 답한다. 팀원들과 회의할 때 ‘각자 이름 20개씩 내는 겁니다’하고 이름 모집을 했다. 한 스태프는 작명 프로그램도 돌렸다. 결국 다 내 뜻대로 하긴 했는데(웃음) 우선 보늬는 순우리말로 ‘안아주다’라는 뜻이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내 생각에 <얼음땡>은 인물들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고, 소재와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영화 같다. 인물들도 사실은 장기말처럼 생각한 면이 있다. 이름도 역할에 따라서 짓게 됐고. 짠돌이란 이름은 사실 반대가 좀 있었는데 내가 웃기다고 밀어붙였다!
Q. 보늬와 짠돌이는 기능적인 캐릭터로 출발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작품을 완성하면서 생각한 둘의 전사랄지 배경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원래 없다가 배우들이 부탁해서 사후에 작성했다. 꽤나 길게 썼는데… (웃음) 지금 기억나는 건 짠돌이가 얼마나 찌질한 인물이고 보늬가 얼마나 씩씩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다. 보늬가 엄마 때문에 자기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씩씩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땐 조폭마누라 소리를 들었을 거고. 짠돌이랑은 평소 말을 몇 마디 해보지 않았지만, 짠돌이 입장에선 보늬가 자기에게 말을 거는 순간 보늬와 결혼까지 생각했을 거라고 상상했다.
Q. 친하지도 않은데!
맞다. 그래도 보늬가 먼저 짠돌이에게 말을 건 건, 영화에 아빠랑 닮았다고도 언급했지만, 보늬가 사랑하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선 가릴 게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친하지 않은 남자애를 집까지 끌고 와서 강요할 수 있을 정도로.
Q. 짠돌이는 비록 보늬와 갈등을 빚지만 특별히 불안감이나 긴장감을 조성하지는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캐릭터를 구체화하며 고려한 사항이 있을까?
짠돌이 캐릭터가 찌질하지만 애정이 가는, 그래서 관객분들이 둘의 훗날을 응원할 수 있어야 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눈을 감을 때 좀 편히 감을 수 있고. 그러니까 서툰 거지 나쁜 건 아닌 인물을 그려내고 싶었다. 운 좋게도 그게 성공했는지 어제 트위터를 보니까 어떤 분께서 백제현 배우와 박정희 배우 투샷과 함께 백제현 배우 귀엽다는 글을 올려두셨더라. 콕 집어 백제현 배우만 귀엽다고 해서 박정인 배우가 약간 삐치기도 했다.(웃음) 그래도 짠돌이가 비호감으로 보이지 않아서, 호감캐로 느껴져서 다행이었다.
Q. 캐스팅 과정도 궁금하다.
박정인 배우와는 전작도 함께했다. 되게 씩씩한 타입이다. 나는 최대한 인물 그대로를 캐릭터에 반영하려고 하는데, 정인 배우라면 연기할 필요 없이 보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나리오에 처음부터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고 내가 생각하던 보늬의 이미지랑도 너무 잘 맞았고.
백제현 배우 같은 경우는, 이 영화가 누가 봐도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내용이지 않나. 근데 백제현 배우는 오디션에서 끝까지 안락사 반대를 했다. ‘이 자는 짠돌이의 자질이 있다’ 생각했다. 그것 말고도 엉뚱한 점들이 많았다. 오디션 늦을까봐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다거나, 빼빼로데이라고 빼빼로를 선물해준다거나. 짠돌이는 원래가 조금 독특하지만 사랑스러운 사람이 하는 게 맞다 싶어서 같이 작업하자고 했다.
Q. 보늬는 고등학생 여자아이치고는 엄마한테 엄청 상냥하다. 앙칼지게 말하지도 않고 화도 잘 안 내고. 어떤 면에서는 그 침착함이 전형적인 여고생 재현과는 구분되는 것 같다.
내 성향을 많이 반영했는데, 내가 그렇게 앙칼진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그냥 엄마를 너무 좋아하는 ‘엄미새’랄까?
엄마가 눈사람이 되는 게 보늬와 엄마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을까? 양육자와 물리적 거리가 생긴 뒤에야 더 애틋해지는 사람들처럼.
확실히 엄마가 눈사람이 되어서 더 살가워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꼭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아프면 좀더 상냥하게 말하지 않나. 안쓰러워 보이고. 둘의 관계는 이전에도 친구 같은 모녀였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언니이자 엄마라서, 보늬라는 사람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존재라서 절대 보내선 안된다고 생각했으리라고.
Q. ‘얼음땡’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얼음땡이란 게임 자체가 얼음 상태에선 아무것도 못한다는 점에서 인물들의 상황을 은유하기도 한다. 영어 제목으로는 이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
역시 작명엔 자신이 없다.(웃음) 영어 제목은 한 3초 만에 ‘MMM’으로 가자고 했다, Melting My Mom.

Q. 어떻게 보면 슬픈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도, ‘짠돌이’ 명찰까지 단 찐 짠돌이가 등장한다거나, 벽에 붙은 북극곰 사진이 말을 건넨다거나 하는 유머러스한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다.
전작이 코미디다. 아직도 웃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웃음) 나 자체가 우울하지만 웃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왜 여에스더 선생님이 자신을 우울하지만 명랑한 사람이라고 하듯이 나도 그런 것 같다. 연출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관성적으로 웃김을 추구하는 것 같다. 내가 영화를 시작할 때 그 출발 지점에도 아이러니와 유머가 있었지 싶다.
Q. 엄마의 독백은 영화 전반에 걸쳐 괄호 안에 든 자막으로 등장한다. 영화가 보늬를 따라간다면 엄마는 무언의 눈사람으로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에게도 대사를 부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사실 눈사람, 즉 엄마가 주연이어야 내 목표가 달성된다고 생각했다. 눈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되려면 말이다. 그러려면 엄마에게 무조건 의사가 있어야 했다. 엄마와 보늬가 소통을 해야 엄마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할 수 있지 않나. 둘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기도 하고. 그래서 엄마 눈사람에게 대사를 부여하는 건 내게 너무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졌다.
Q. 엄마와 대면하는 마지막 순간 보늬는 한글표가 없이도 엄마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웃는다.
사실 보늬가 구체적인 메시지를 듣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당부라든가. 너무 아픈 사람들은 자기가 전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죽기도 하지 않나. 그래서 더 슬픈 것 같다. 보늬는 모르고 엄마랑 관객만 아는 말이 있다는 게.
Q. 엄마와 보늬가 결정적 선택을 하는 순간에 보늬와 짠돌이는 겨울옷을 입고 있다. 어떻게 보면 눈사람이 밖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시점이기도 하다. 계절감을 특별히 의식했을지 궁금하다.
당시엔 계절감보다도 예쁜 옷, 어울리는 옷에 신경 썼던 것 같다. 짠돌이도 목도리를 해야 사랑스러움이 완성될 것 같아서 목도리를 둘렀다. 지금이었다면 추운 겨울에 보늬가 마지막으로 엄마랑 산책을 하는 정도는 표현했을 것 같다. 마지막에 대한 준비를 좀 길게 보여줬으면 좋았겠다 싶다.
Q. 냉장고 속 어둠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건 아무래도 엄마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고, 그게 엄마의 시점이기 때문이겠지.
맞다. 순간순간 어두운 장면을 삽입한 건 엄마가 얼마나 춥고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 사람이 딸을 정말 사랑하지만 버틸 수 없다는 걸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Q. 이 작품은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안락사, 존엄사, 돌봄노동, 연명치료 등 영화가 은유하는 것을 명쾌하게 선으로 연결해가며 볼 수도 있고, 판타지 영화로서의 감흥을 즐기면서 볼 수도 있을 거다. 혹시 영화를 만들면서 ‘여기에 집중해서 봐주면 좋겠다’ 생각한 방식이 있나?
‘삶과 죽음’에 좀 더 포커스를 두어주실 수 있다면 좋겠다. 연명치료나 안락사에 대한 나 개인의 주관이 있기도 하지만 그전에 삶과 죽음을 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얼음땡>을 준비하던 당시에 꽂혔던 게 이분법적인 규정 사이에 끼어 있거나 사각지대로 밀쳐져 있는 인물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전작에선 여대에 다니는 여자 주인공의 가랑이 사이에 뿔이 자라는 이야기를 썼다. 남자는 아닌데 남이 인식하기에 남자가 되어버린 사람. 이번 작품에서도 삶과 죽음 사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를 다뤄보고자 했다. 내 생각에 산다는 건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인데, 눈사람이 된 엄마는 주체성을 잃어가며 삶과 죽음 사이에 있다고 생각했다. 삶과 죽음이란 게 뭔지, 그리고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갈 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Q. 관련해서 리서치도 많이 했겠다.
안락사 관련된 다큐멘터리는 거의 다 봤다. 그러곤 정수기처럼 눈물 콸콸 쏟고. 상상엔 한계가 있다 보니까 미디어로라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접하려고 노력했다. 그것도 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져서 힘들던 와중에 엄마가 갑자기 아프셨다. 다행히 지금은 괜찮으신데, 그때 확 이게 어떤 이야기인지 실감이 났다.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현재 세계의 관련 법안 현황도 많이 찾아봤다. 그러면서 느낀 게, 법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안락사를 고민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지 않나. 사실은 미래의 우리 자신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임에도,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 당사자가 아닌 위치에서 현안에 접근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느꼈고 영화를 통해 일종의 사고실험을 하고 싶기도 했다.
Q. <얼음땡>은 이번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첫 국내 상영을 했고, 그전에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한차례 관객과 만났다. 여름의 고장과 겨울의 고장에서 한번씩 상영한 셈이다.
눈사람에 꽂혀 있을 때 ‘눈사람의 끝을 보고 싶다’하면서 삿포로 눈축제에 갔다. <얼음땡>을 쓰기 전인데, 그 뒤에 이 작품이 유바리에 초청되어 놀랍고 기분 좋았다. 근데 막상 현장에서 이래저래 변동도 많고 착오도 있어서 관객분들에게 하고 싶던 말을 다 하진 못했다. 정동진에서 드디어 같은 언어를 쓰는 관객분들을 만났다!
Q. 제27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첫날 첫 섹션 첫 작품으로 상영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짱구 극장판 중에 <폭풍을 부르는 석양의 떡잎마을 방범대>라고 있다. 떡잎마을의 한 극장에서 상영되는, 끝나지 않는 영화 속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빨려들어간다. 그 안에서 탈출하려면 영화를 끝내야 되는데 영화가 끝나면 짱구는 좋아하는 누나랑 헤어진다. 영화에 보면 현실로 나와서 ‘영화 끝’ 크레딧을 보면서 짱구가 막 괴로워한다. 운동장에 앉아서 내 영화를 보는데 그게 생각났다. 정말정말 기쁜데 괴롭기도 한 거. 상영중에 핸드폰 하는 분이 있으면 괜히 눈치보고, 울 만한 장면에 주위 흘끗거리고. 그러면서도 내 영화가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 첫 상영작이라는 점이 즐겁고 짜릿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시는 걸 보고 ‘이래서 영화를 하는구나’ 느낌을 받기도 했다. <얼음땡>은 나를 상정하고 만든 영화기 때문에 내 또래는 나와 감상이 비슷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특히 20대 여자는 엄마랑 너무 가까운 것 같고. 근데 나이 드신 분들과도 공감대가 형성될 때면, 죽음이라는 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익숙해지진 않는 거구나, 우리가 성별과 나이가 달라도 연결돼 있구나 연대감을 많이 느낀다.
Q. GV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을까.
무대에 오르고 보니까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의 마루가 온 거다. 내가 마루를 어떻게 이겨, 마루가 주인공이야 가만히 있어! 스스로한테 말했다. 거기다 <살아있게>의 박재범 감독님은 둘째가 생겼다고 하셨다! 망했다, 내가 개가 있어 애가 있어 뭐가 있어.(웃음) 내 차례는 빨리 넘겨야겠다는 생각에 ‘감사합니다’만 하고 지나간 게 나중에 생각하니 아쉽다.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작년 겨울에 기르던 강아지가 갑자기 자연사를 했다. 사실 이 영화는 나 스스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서, 심리적 방어벽을 쌓기 위해 만든 거기도 했다. 내 죽음은 상관이 없는데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솔직히 영화를 완성하고도 위로가 되지는 않더라. 그래도 그런 건 있었다. 우리 강아지는 화장을 해서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단지에 뼛가루로 남았다.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이 영화를 다 만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내가 ‘우리 강아지의 형태가 변했을 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그니까, 남아있는 게 있었다. 우리 강아지의 몸도 형태를 바꾸어 남아 있고 좋았던 기억도 남아 있고, 내 안에 많은 것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감정이 조금 진정되고 나니 내가 날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 누구나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을 겪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때 한 번쯤 이 이야기를 떠올려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눈사람이 그랬듯, 최근 위예원 감독에게 찾아온 소재나 이야기가 있을까?
나는 영감보다 마감이 더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마침 준비하는 게 있어서 9월까지 글을 써야 하는데 아직 만들어진 글이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이 뇌가 제일 잘 굴러가는 시간이다.
아직은 더 구체화해야 하지만, 일단은 인물에 대해 쓰고 싶다. 지금까지는 소재나 스토리에 집중했던 것 같다. 이번엔 그보단, 위태로운 사람들이 사소한 사건을 통해 인간관계와 자기 내면의 변화를 겪고 폭발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다른 아이디어도 있다. 내 강박의 근원을 추적하는 영화를 만들어서 관객분들과 공유하는 거다.
Q. 정동진독립영화제 인스타그램에서 ‘사인을 만들었으니 많이 요청해 달라’는 홍보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사인 요청이 좀 들어왔을까.
아니! 더 잘 돼야겠다. 절치부심의 계기!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지! (웃음) 심지어 정동진 버전의 사인인데. 영화 속 눈사람과 정동진의 갈매기를 그려넣었다! (*이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위예원 감독은 사인 요청을 받았다. 눈사람과 정동진 갈매기와 영화에 대한 농담을 모쪼록 더 많은 분들이 나누시기를 바라며!)
인터뷰 / 김송요
사진 / 강태욱
“엄마, 나 바퀴벌레 돼도 키울 거야?” 한동안 메신저 채팅방을 지배하던 문구 대신에 <얼음땡>이 던지는 질문, “딸, 엄마가 눈사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위예원 감독은 본인의 답변을 유예하거나 모호하게 두는 대신 용감하게 밀어붙인다. 설령 모두가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는 지금 질문에 대한 정답을 세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터널의 양 끝 사이에서 취하고자 하는 태도를 마련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Q. 작품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마음속에 오래 있던 이야기다. 재수생 시절 겨울에 수업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데 눈이 쌓여있는 거다. 갑작스럽게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서 친구랑 한 3~4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어머니랑 같이 온 어린 아이도, 무뚝뚝해 보이는 남성분도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발길을 못 떼는 모습을 봤다. 어떤 아주머니께선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해, 냉장고에라도 넣어놔야 되는 거 아니야?’ 내게 말을 걸기도 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거기가 평소 자주 걸어다니는 공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은 분명 녹아서 초라하게 뒹구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았다. 일순간 추한 꼴을 보이기 전에 내 손으로 망가뜨려야겠다, 내 손을 다 부셔버리고 가야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하는 맘이 스쳤다. 눈사람을 예뻐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파괴적인 욕구를 참고 집에 겨우 들어왔다. 그러면서 ‘눈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사람 모양의 눈뭉치일 뿐인데 나랑 유대감이 생긴 존재. 그때부터 언젠가는 눈사람이 주연인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마음에 담아뒀다가, 첫 작품이 끝나고 그 생각을 다시 끄집어냈다. 두 번째 작품이란 건, 나를 영화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 한 편을 찍은 걸로 ‘영화하는 사람’이라고 불리지는 않는 것 같아서. 조바심을 느끼던 와중 눈사람이란 소재가 다시 떠올랐고, 만약 눈사람이 우리 엄마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랬더니 너무 슬픈 거다. 내가 진짜 눈물이 없는데 눈물이 다 났다. 날 울릴 정도면 사람들도 울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봐도 될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들떠서 잠을 잘 못 잤다. 일어나서 엄마한테 만약 내가 눈사람이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다가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우리 모녀가 그런 사이가 아닌데! 그 경험들 덕에 ‘이건 되는 주식’ 생각하면서 시작했다.
Q. 본인을 설득할 수 있는 소재였나 보다. 1일차 GV에서 들었을 땐 눈사람을 만들었을 때 느낀 차가움이나 부피감, 즉 일종의 물성이 주는 충격에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맞다. 손이 너무 시렵더라. 초기 컨셉엔 눈사람처럼 손발이 찬, 수족냉증 캐릭터가 있었다. 근원적으로는 ‘눈사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데서 파생된 아이디어였다.
Q. 비슷한 표현이 영화에도 나온다. 짠돌이가 어머니를 따뜻한 물로 목욕시켜 드리면 어떻겠냐고 하는 대사가 그렇다. 사랑하는 존재를 따뜻하게 해주고 싶지만 그로 인해 파괴하고 마는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얼음땡>은 한 장면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보늬가 엄마를 놓아주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폭력, 점점 냉장고 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엄마. 그 이미지의 교차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짠돌이의 목욕 언급은 내 의도대로 완전히 전달되진 않았다. 원래는 진짜로 엄마를 소금 속에 넣으면 엄마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해결책을 심어두려는 거였다. 어떻게 보면 안락사도 치료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참다가 하게 되는 선택인 거니까. 사실 대안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 이 영화가 공정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Q. 마지막에 보늬가 주방 찬장의 천일염을 쳐다보는 것도 그걸 암시하는 맥락일까.
패키지에 적힌 소금의 효능에 기억력이 좋아지고 피가 맑아지고… 얼었던 눈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글귀를 넣어 보여주려 했다. 근데 촬영기간이 딱 하루였어서, 그 인서트 자체를 못 땄다.
Q. 그럼 지금은 어떤지? 만약 추가 촬영과 편집을 할 여유가 생긴다면 그 인서트를 넣고 싶나?
그래도 지금이 완성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이후로 내가 많이 바뀌었다. 사실 이 작품은 자랑스럽기보다 부끄러운 점이 더 많다. 배급사에서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됐다고 전화를 받았는데, 유명한 지현우 배우 대상 수상 장면처럼 어리둥절해했다.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왜지?’ 상태였다. 그럼에도 다시는 못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면에선 그땐 뭘 몰랐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던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눈사람을 주연으로 세우는 무모한 짓은 못할 것 같다.
Q. 그럼에도 ‘이 부분은 마음에 든다’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미 완성된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 역시 함께 공유해주시면 귀기울여 듣겠다.
일단 아쉬운 부분은 후반에 짠돌이와 보늬가 서로 갈등하는 장면. 이 영화가 사회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학교 지원을 받고 만든 거여서 대립을 가시화했던 건데, 영화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대로 자랑스러운 부분은, 영화에 나만 아는 미술 요소가 있다. 이를테면 부엌의 싹 난 감자. 싹 난 감자가 정겨운 집의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미술감독에게 어떻게든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신발장에 붙여둔 보늬의 어릴적 태권도 하는 사진도 그렇다. 보늬 연령대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익숙하고 가정적인 장면이 그런 데 있다고 생각했다. 사소하지만 마음에 닿는 부분들이 만족스럽다.
Q. 엄마 눈사람 디자인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엄마 눈사람은 눈이 특이하다. 단추 같은 형태가 아니라 진짜 사람 눈처럼 생겼다. 눈동자 움직임을 통해 보늬와 소통하기도 한다.
만약 전형적인 눈사람의 모습이라면 관객이 ‘혹시 이게 다 보늬의 상상일까’ 의심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외형으로 충분히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고한 게 <판의 미로>에 나오는, 손에 눈이 달린 유명한 괴물이었다. 다만 그렇게 만들어놓고 보니 배우들이 무서워하는 거다.(웃음) 이 영화 자체의 톤이 부드럽지 않나. 색감도 글로우하고. 만약 눈사람이 그저 귀여운 모양새라면 영화가 전체적으로 플랫하고 매력 없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눈사람만큼은 좀 이해하고 가달라고 설득했다.
Q. 영화의 미술에 재미난 요소들이 많은 것 같다. 엄마가 볼 수 있도록 냉장고 안쪽으로 붙어 있는 보늬의 사진도 그렇고, 보늬가 읽는 <냉기제거 반신욕> 책이나 창문에 달린 테루테루보즈도 그렇고.
촬영 당시 보늬가 노력하고 있단 걸 미술 소품으로 설명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서적을 통해선 보늬가 연구를 많이 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테루테루보즈 같은 경우는, 사람이 현대의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치의 상태에선 온갖 걸 다 해보게 될 거라 생각했다. 보늬가 하다하다 테루테루보즈에게 비는 지경까지 갔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일몰에 비친 테루테루보즈를 화면에 담고 싶었다. 보늬는 엄마와 함께하는 것을 염원하지만 이들의 시간은 점점 끝나가는 걸 암시하고 싶었다. 일몰이라는 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사람은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걸 막아보고 싶어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슬픈 이미지이기도 하다.
Q. 어린이 사진은… 본인의 어린 시절일까?!
나는 그렇게 귀엽지 않았다.(웃음) 박정인 배우에게 받은 사진을 출력해서 붙였다.
Q. 캐릭터에 대해 얘기하자면, 짠돌이는 어린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몹시 외부자적인 입장으로 느껴진다.
엄마가 할머니를 간병했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자기가 돌봄노동의 주체가 아닌 입장에서 관조적으로 하는 말이고, 보늬에게 하는 말도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린다. 근데 실은 짠돌이가 답을 알고 있었다니! 위예원 감독이 생각한 이 인물의 역할이랄지 기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우선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안락사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부딪치는. 논리적으로 틀린 건 아니다.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는데, ‘삼시세끼 꼬박꼬박 야채 위주로 드시고 운동하시면 건강해집니다’가 틀린 말이 아닌 건 다들 알지만, 그게 꼭 행복한 삶의 방식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덧붙이자면 짠돌이란 이름 자체가 소금의 상징이다. 그리고 보늬는 결국 엄마를 소금 목욕시키지 않는다.
짠돌이는 엄마와 보늬 사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으면서 함부로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포인트 중에 하나가, 짠돌이가 보늬에게 조언 내지는 잔소리를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가면서 하는 말이 ‘수행평가 때문’이란 거다. 그게 정말 얄팍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안락사 반대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표현한 걸 수도 있고.
짠돌이의 세 번째 역할은, 엄마가 떠난 뒤 새로운 희망이 필요한 보늬 곁에 있어줄 존재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끼리 챙겨주고, 응원해주고, 좋아해주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Q. 개인적으로는 소금이 해결책이라는 게 노출되지 않아서 더 좋다. 지금 완성본에선 짠돌이가 제시하는 대책이 약간 대체의학처럼 들리고 못미더운 점이 재미를 주는 것 같기도 해서.
그리고 그게 알려졌으면 내가 GV 때 토마토나 달걀 맞았을 것 같다.(웃음) 결과적으론 여러모로 운이 따라준 것 같다.
Q. 짠돌이는 이름에서 소금이 연상되는, 애초에 어떤 개념을 인간화한 존재 같기도 하다. 반면 보늬, ‘설보늬’는 상징적이긴 해도 사람 이름이다.
작명이 너무 어렵다! 강아지를 키웠는데 이름이 ‘아지’였다. 누가 ‘왜 이렇게 이름을 못 지어?’하면 항상 이 에피소드로 답한다. 팀원들과 회의할 때 ‘각자 이름 20개씩 내는 겁니다’하고 이름 모집을 했다. 한 스태프는 작명 프로그램도 돌렸다. 결국 다 내 뜻대로 하긴 했는데(웃음) 우선 보늬는 순우리말로 ‘안아주다’라는 뜻이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내 생각에 <얼음땡>은 인물들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고, 소재와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영화 같다. 인물들도 사실은 장기말처럼 생각한 면이 있다. 이름도 역할에 따라서 짓게 됐고. 짠돌이란 이름은 사실 반대가 좀 있었는데 내가 웃기다고 밀어붙였다!
Q. 보늬와 짠돌이는 기능적인 캐릭터로 출발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작품을 완성하면서 생각한 둘의 전사랄지 배경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원래 없다가 배우들이 부탁해서 사후에 작성했다. 꽤나 길게 썼는데… (웃음) 지금 기억나는 건 짠돌이가 얼마나 찌질한 인물이고 보늬가 얼마나 씩씩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다. 보늬가 엄마 때문에 자기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씩씩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땐 조폭마누라 소리를 들었을 거고. 짠돌이랑은 평소 말을 몇 마디 해보지 않았지만, 짠돌이 입장에선 보늬가 자기에게 말을 거는 순간 보늬와 결혼까지 생각했을 거라고 상상했다.
Q. 친하지도 않은데!
맞다. 그래도 보늬가 먼저 짠돌이에게 말을 건 건, 영화에 아빠랑 닮았다고도 언급했지만, 보늬가 사랑하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선 가릴 게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친하지 않은 남자애를 집까지 끌고 와서 강요할 수 있을 정도로.
Q. 짠돌이는 비록 보늬와 갈등을 빚지만 특별히 불안감이나 긴장감을 조성하지는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캐릭터를 구체화하며 고려한 사항이 있을까?
짠돌이 캐릭터가 찌질하지만 애정이 가는, 그래서 관객분들이 둘의 훗날을 응원할 수 있어야 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눈을 감을 때 좀 편히 감을 수 있고. 그러니까 서툰 거지 나쁜 건 아닌 인물을 그려내고 싶었다. 운 좋게도 그게 성공했는지 어제 트위터를 보니까 어떤 분께서 백제현 배우와 박정희 배우 투샷과 함께 백제현 배우 귀엽다는 글을 올려두셨더라. 콕 집어 백제현 배우만 귀엽다고 해서 박정인 배우가 약간 삐치기도 했다.(웃음) 그래도 짠돌이가 비호감으로 보이지 않아서, 호감캐로 느껴져서 다행이었다.
Q. 캐스팅 과정도 궁금하다.
박정인 배우와는 전작도 함께했다. 되게 씩씩한 타입이다. 나는 최대한 인물 그대로를 캐릭터에 반영하려고 하는데, 정인 배우라면 연기할 필요 없이 보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나리오에 처음부터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고 내가 생각하던 보늬의 이미지랑도 너무 잘 맞았고.
백제현 배우 같은 경우는, 이 영화가 누가 봐도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내용이지 않나. 근데 백제현 배우는 오디션에서 끝까지 안락사 반대를 했다. ‘이 자는 짠돌이의 자질이 있다’ 생각했다. 그것 말고도 엉뚱한 점들이 많았다. 오디션 늦을까봐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다거나, 빼빼로데이라고 빼빼로를 선물해준다거나. 짠돌이는 원래가 조금 독특하지만 사랑스러운 사람이 하는 게 맞다 싶어서 같이 작업하자고 했다.
Q. 보늬는 고등학생 여자아이치고는 엄마한테 엄청 상냥하다. 앙칼지게 말하지도 않고 화도 잘 안 내고. 어떤 면에서는 그 침착함이 전형적인 여고생 재현과는 구분되는 것 같다.
내 성향을 많이 반영했는데, 내가 그렇게 앙칼진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그냥 엄마를 너무 좋아하는 ‘엄미새’랄까?
엄마가 눈사람이 되는 게 보늬와 엄마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을까? 양육자와 물리적 거리가 생긴 뒤에야 더 애틋해지는 사람들처럼.
확실히 엄마가 눈사람이 되어서 더 살가워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꼭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아프면 좀더 상냥하게 말하지 않나. 안쓰러워 보이고. 둘의 관계는 이전에도 친구 같은 모녀였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언니이자 엄마라서, 보늬라는 사람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존재라서 절대 보내선 안된다고 생각했으리라고.
Q. ‘얼음땡’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얼음땡이란 게임 자체가 얼음 상태에선 아무것도 못한다는 점에서 인물들의 상황을 은유하기도 한다. 영어 제목으로는 이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
역시 작명엔 자신이 없다.(웃음) 영어 제목은 한 3초 만에 ‘MMM’으로 가자고 했다, Melting My Mom.
Q. 어떻게 보면 슬픈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도, ‘짠돌이’ 명찰까지 단 찐 짠돌이가 등장한다거나, 벽에 붙은 북극곰 사진이 말을 건넨다거나 하는 유머러스한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다.
전작이 코미디다. 아직도 웃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웃음) 나 자체가 우울하지만 웃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왜 여에스더 선생님이 자신을 우울하지만 명랑한 사람이라고 하듯이 나도 그런 것 같다. 연출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관성적으로 웃김을 추구하는 것 같다. 내가 영화를 시작할 때 그 출발 지점에도 아이러니와 유머가 있었지 싶다.
Q. 엄마의 독백은 영화 전반에 걸쳐 괄호 안에 든 자막으로 등장한다. 영화가 보늬를 따라간다면 엄마는 무언의 눈사람으로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에게도 대사를 부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사실 눈사람, 즉 엄마가 주연이어야 내 목표가 달성된다고 생각했다. 눈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되려면 말이다. 그러려면 엄마에게 무조건 의사가 있어야 했다. 엄마와 보늬가 소통을 해야 엄마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할 수 있지 않나. 둘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기도 하고. 그래서 엄마 눈사람에게 대사를 부여하는 건 내게 너무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졌다.
Q. 엄마와 대면하는 마지막 순간 보늬는 한글표가 없이도 엄마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웃는다.
사실 보늬가 구체적인 메시지를 듣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당부라든가. 너무 아픈 사람들은 자기가 전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죽기도 하지 않나. 그래서 더 슬픈 것 같다. 보늬는 모르고 엄마랑 관객만 아는 말이 있다는 게.
Q. 엄마와 보늬가 결정적 선택을 하는 순간에 보늬와 짠돌이는 겨울옷을 입고 있다. 어떻게 보면 눈사람이 밖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시점이기도 하다. 계절감을 특별히 의식했을지 궁금하다.
당시엔 계절감보다도 예쁜 옷, 어울리는 옷에 신경 썼던 것 같다. 짠돌이도 목도리를 해야 사랑스러움이 완성될 것 같아서 목도리를 둘렀다. 지금이었다면 추운 겨울에 보늬가 마지막으로 엄마랑 산책을 하는 정도는 표현했을 것 같다. 마지막에 대한 준비를 좀 길게 보여줬으면 좋았겠다 싶다.
Q. 냉장고 속 어둠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건 아무래도 엄마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고, 그게 엄마의 시점이기 때문이겠지.
맞다. 순간순간 어두운 장면을 삽입한 건 엄마가 얼마나 춥고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 사람이 딸을 정말 사랑하지만 버틸 수 없다는 걸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Q. 이 작품은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안락사, 존엄사, 돌봄노동, 연명치료 등 영화가 은유하는 것을 명쾌하게 선으로 연결해가며 볼 수도 있고, 판타지 영화로서의 감흥을 즐기면서 볼 수도 있을 거다. 혹시 영화를 만들면서 ‘여기에 집중해서 봐주면 좋겠다’ 생각한 방식이 있나?
‘삶과 죽음’에 좀 더 포커스를 두어주실 수 있다면 좋겠다. 연명치료나 안락사에 대한 나 개인의 주관이 있기도 하지만 그전에 삶과 죽음을 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얼음땡>을 준비하던 당시에 꽂혔던 게 이분법적인 규정 사이에 끼어 있거나 사각지대로 밀쳐져 있는 인물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전작에선 여대에 다니는 여자 주인공의 가랑이 사이에 뿔이 자라는 이야기를 썼다. 남자는 아닌데 남이 인식하기에 남자가 되어버린 사람. 이번 작품에서도 삶과 죽음 사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를 다뤄보고자 했다. 내 생각에 산다는 건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인데, 눈사람이 된 엄마는 주체성을 잃어가며 삶과 죽음 사이에 있다고 생각했다. 삶과 죽음이란 게 뭔지, 그리고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갈 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Q. 관련해서 리서치도 많이 했겠다.
안락사 관련된 다큐멘터리는 거의 다 봤다. 그러곤 정수기처럼 눈물 콸콸 쏟고. 상상엔 한계가 있다 보니까 미디어로라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접하려고 노력했다. 그것도 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져서 힘들던 와중에 엄마가 갑자기 아프셨다. 다행히 지금은 괜찮으신데, 그때 확 이게 어떤 이야기인지 실감이 났다.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현재 세계의 관련 법안 현황도 많이 찾아봤다. 그러면서 느낀 게, 법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안락사를 고민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지 않나. 사실은 미래의 우리 자신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임에도,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 당사자가 아닌 위치에서 현안에 접근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느꼈고 영화를 통해 일종의 사고실험을 하고 싶기도 했다.
Q. <얼음땡>은 이번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첫 국내 상영을 했고, 그전에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한차례 관객과 만났다. 여름의 고장과 겨울의 고장에서 한번씩 상영한 셈이다.
눈사람에 꽂혀 있을 때 ‘눈사람의 끝을 보고 싶다’하면서 삿포로 눈축제에 갔다. <얼음땡>을 쓰기 전인데, 그 뒤에 이 작품이 유바리에 초청되어 놀랍고 기분 좋았다. 근데 막상 현장에서 이래저래 변동도 많고 착오도 있어서 관객분들에게 하고 싶던 말을 다 하진 못했다. 정동진에서 드디어 같은 언어를 쓰는 관객분들을 만났다!
Q. 제27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첫날 첫 섹션 첫 작품으로 상영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짱구 극장판 중에 <폭풍을 부르는 석양의 떡잎마을 방범대>라고 있다. 떡잎마을의 한 극장에서 상영되는, 끝나지 않는 영화 속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빨려들어간다. 그 안에서 탈출하려면 영화를 끝내야 되는데 영화가 끝나면 짱구는 좋아하는 누나랑 헤어진다. 영화에 보면 현실로 나와서 ‘영화 끝’ 크레딧을 보면서 짱구가 막 괴로워한다. 운동장에 앉아서 내 영화를 보는데 그게 생각났다. 정말정말 기쁜데 괴롭기도 한 거. 상영중에 핸드폰 하는 분이 있으면 괜히 눈치보고, 울 만한 장면에 주위 흘끗거리고. 그러면서도 내 영화가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 첫 상영작이라는 점이 즐겁고 짜릿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시는 걸 보고 ‘이래서 영화를 하는구나’ 느낌을 받기도 했다. <얼음땡>은 나를 상정하고 만든 영화기 때문에 내 또래는 나와 감상이 비슷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특히 20대 여자는 엄마랑 너무 가까운 것 같고. 근데 나이 드신 분들과도 공감대가 형성될 때면, 죽음이라는 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익숙해지진 않는 거구나, 우리가 성별과 나이가 달라도 연결돼 있구나 연대감을 많이 느낀다.
Q. GV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을까.
무대에 오르고 보니까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의 마루가 온 거다. 내가 마루를 어떻게 이겨, 마루가 주인공이야 가만히 있어! 스스로한테 말했다. 거기다 <살아있게>의 박재범 감독님은 둘째가 생겼다고 하셨다! 망했다, 내가 개가 있어 애가 있어 뭐가 있어.(웃음) 내 차례는 빨리 넘겨야겠다는 생각에 ‘감사합니다’만 하고 지나간 게 나중에 생각하니 아쉽다.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작년 겨울에 기르던 강아지가 갑자기 자연사를 했다. 사실 이 영화는 나 스스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서, 심리적 방어벽을 쌓기 위해 만든 거기도 했다. 내 죽음은 상관이 없는데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솔직히 영화를 완성하고도 위로가 되지는 않더라. 그래도 그런 건 있었다. 우리 강아지는 화장을 해서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단지에 뼛가루로 남았다.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이 영화를 다 만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내가 ‘우리 강아지의 형태가 변했을 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그니까, 남아있는 게 있었다. 우리 강아지의 몸도 형태를 바꾸어 남아 있고 좋았던 기억도 남아 있고, 내 안에 많은 것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감정이 조금 진정되고 나니 내가 날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 누구나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을 겪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때 한 번쯤 이 이야기를 떠올려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눈사람이 그랬듯, 최근 위예원 감독에게 찾아온 소재나 이야기가 있을까?
나는 영감보다 마감이 더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마침 준비하는 게 있어서 9월까지 글을 써야 하는데 아직 만들어진 글이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이 뇌가 제일 잘 굴러가는 시간이다.
아직은 더 구체화해야 하지만, 일단은 인물에 대해 쓰고 싶다. 지금까지는 소재나 스토리에 집중했던 것 같다. 이번엔 그보단, 위태로운 사람들이 사소한 사건을 통해 인간관계와 자기 내면의 변화를 겪고 폭발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다른 아이디어도 있다. 내 강박의 근원을 추적하는 영화를 만들어서 관객분들과 공유하는 거다.
Q. 정동진독립영화제 인스타그램에서 ‘사인을 만들었으니 많이 요청해 달라’는 홍보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사인 요청이 좀 들어왔을까.
아니! 더 잘 돼야겠다. 절치부심의 계기!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지! (웃음) 심지어 정동진 버전의 사인인데. 영화 속 눈사람과 정동진의 갈매기를 그려넣었다! (*이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위예원 감독은 사인 요청을 받았다. 눈사람과 정동진 갈매기와 영화에 대한 농담을 모쪼록 더 많은 분들이 나누시기를 바라며!)
인터뷰 / 김송요
사진 / 강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