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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FF28_보폭을 찾아서_<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 서예인 감독 인터뷰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는 영화제를 가보는 게 평생 꿈은 무명 감독 종수와 종수의 마지막 영화 <안개 속으로>를 망친 주연 배우 혜미의 로드 무비다. 블랙 코미디 틀 안에서 전개되지만, 길 위에서 정처 없이 헤매는 이들을 다독이기도 한다. 멈칫하는 걸음은 자신에게 맞는 너비를 찾기 위함일 수도 있다. 정동진독립영화제 제작지원작 서예인 감독과 만나 단편이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궁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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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온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작년에 <스포일리아>를 정동진에서 봤다. 친구들과 내 영화가 정동진에는 못 왔을까 이야기하기도 했다. 친구가 안 될 만하니까 안 되지 않았을까 농담하더라.(웃음) 언젠가 꼭 정동진에 오자는 다짐했었다. <서글픈 후회>, <뉴월드 관광> 등 봤던 영화 하나하나 다 좋았다. 영화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관객들 반응이 잘 보였고, 원초적인 극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Q. 영화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주도적으로 많은 걸 해볼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특정한 계기라기보다는 그 환경 덕이었다. 영상팀에 있었고 자연스럽게 '서 감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오래된 영화들을 패러디하는 영상을 계속 만들다 보니 사람들도 나를 서 감독이라 불러줬다. 나도 영상을 만들어 이야기하는 일이 재밌었다. 자연스럽게 영화인의 꿈을 갖게 됐다. 학교가 사교육 금지여서 혼자 사부작사부작 공부해서 진학했고,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내는 일에 재미를 붙여 작업했다.

홀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었고, 그에게 빠져서 모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초기작의 담백한 시선,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이 너무 좋았다. 덕분에 영화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졌다. 그 시선을 닮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힘들 때면 <원더풀 라이프>(2001)와 <환상의 빛>(1995)을 보면서 영화에 대한 에너지를 채운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어떤 사람의 데뷔작을 뺏어오고 싶은지를 주제로 할 때가 있다. 나는 항상 <환상의 빛>을 뺏어오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는 울림이 있다. 정적이면서도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다니 싶어서.


Q. 대학에 진학해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각각 어떤 영화였나.

<홉 투비 햄릿>(2020)은 대사를 딱 세 줄만 써야 하는 과제로 시작한 영화였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배우가 무대에서 홀로 연습하다 객석에 관객 한 명이 들어와 있는 걸 발견한다. 도망쳤다가, 저 사람 앞에서도 연기를 못하면 앞으로 연기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 다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짧게 담았다. 

<골목길>(2023)은 그래도 폼을 갖추고 만든 첫 영화다. 수배자 몽타주 전단을 붙이고 다니는 경찰이, 전단 속 사람이 자기 엄마라고 말하는 꼬마를 발견한다. 순경은 아이를 통해 수배자를 잡고 싶어 하고 다른 경찰은 어떻게든 아이를 지켜주고 싶어 하면서 생기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살처분>(2025)은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던 주희가 거액을 준다는 일용직 현장에 간다. 조류 살처분 현장이었다. 거기서 병에 걸리지 않은 병아리 한 마리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Q.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에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왔다고 들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수업에서 다른 친구가 썼던 시나리오에 로그 라인이 있었다. 가족들이 "조금만 더 죽은 척해줘"라고 말하는 부분까지가 동일하다. 가장 믿었던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아이러니가 너무 좋아서 내가 찍고 싶다고 했다.

그즈음 <살처분>이 오랫동안 영화제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단편영화 감독인데 영화제를 한 번도 못 간 상태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공포심 속에 살았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서 시나리오를 쓰던 중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관객의 반응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는 일을 겪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자격지심이었던 것 같다. 영화제라는 공간에 내 영화가 왔음에도 만족이나 자기 긍정을 얻지 못하는구나 싶어 영화에 대한 열망이 조금 꺾였다. 강동원 촬영감독과 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불이 타오르는 경험을 했다. 우리가 꿈을 향해 달려가다 절망에 빠졌을 때 나를 도와주는 건 내가 상정한 꿈이나 목표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 간의 진실한 대화일 수도 있겠구나, 서로가 서로를 끄집어 올려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시나리오가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Q. 감독들은 보통 영화제에서 힘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데, 반대의 경험을 한 셈이다.

첫 관객과의 대화였는데 관객들이 질문도 많이 해줄 거라 상상했다. 그래서 혼자 여러 질문을 예상하며 답병을 준비하기도 했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과 현실 사이에는 약간의 괴리감이 있었다. 다른 영화제에서는 어떤 관객이 실시간으로 왓챠피디아에 평점을 매기는 걸 봤다. 내 영화는 아니고 다른 사람 영화였는데도 날카롭게 다가왔다. 영화에서 나오듯 대사를 따라 하기도 하고 사람들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나는 귀가 발달해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말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한다. 티 나지 않게 조금씩 보려고 한다. 결국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잘 가닿았는지 궁금하고, 또 두렵기도 해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편이다. 내 영화를 보면서 늘 생각한다. 편집점을 여기서 잘못 잡았네, 저기는 저렇게 찍으면 안 됐는데. 항상 아쉬움을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Q. 다른 인터뷰에서 절망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스토리텔러 혹은 감독으로서의 절망도 있고, 절망하는 주변 친구들도 많이 봤다. 혜미처럼 현장에 나갔다가 상처받은 동기와 친구들도 봤다. 꿈 때문에 상처받는 친구들을 정말 많이 봤고 나도 그랬다. 사람들은 꿈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꿈이 우리를 죽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고 생각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를 좋아하는데 그도 절망을 많이 이야기한다. 한동안 절망이라는 메시지에 꽂혀 있을 때 앞서 말한 로그 라인을 만났다.


Q. 무명 감독 종수라는 캐릭터에는 본인의 여러 모습이 들어왔을 듯하다.

나를 투영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작가로 도와준 친구가 혜미를 맡아서 썼고, 내가 종수를 맡아 썼다. 결과물을 보고 너무 선배 같다, 내가 많이 투영돼서 찌질하다는 얘기를 들었다.(웃음) 처음으로 다른 캐릭터를 생각하지 않고 나라는 사람을 대입해서 쓴 경험이라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


Q.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이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걸까.

<살처분>에서 여성 캐릭터를 다루고, <골목길>에서 경찰과 아이를 담는 데 다 타자화된 듯한 느낌이 분명 있었다. 주변에서 캐릭터가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얘기해줬다. 나도 동감했다. 이번에는 기원을 나에게서 찾다 보니 쉽게 썼다.

사실 박승현 배우도 많이 담겨 있다. 작업 방식이 기본 골자의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배우를 일찍 캐스팅한다. 배우와 캐릭터에 대해 정말 오랫동안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배우가 내가 배치한 특성을 흡수하기도 하지만 본인의 특성도 가져간다. 박승현 배우가 오디션에서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 우울증과 친구가 되는 삶을 사는 게 예술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 우울한 정서가 기저에 깔려 있어 찌질한 삶을 산다고 했다. 이 배우와 작업하면 내가 채우지 못했던 종수의 깊이를 채울 수 있겠다 싶었다. 특정 부분은 내가 모티브로 작용했지만, 많은 부분은 배우가 스스로 고민하고 연구하며 쌓은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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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첫 등장에서 종수는 목 아래만 보이고, 손목에는 토마토 주스가 흐르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강동원 촬영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목이 잘려 있는 것처럼 강렬한 임팩트 주면서 영화가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종수는 2층 침대를 쓰는데, 원래 같이 작업하던 사람은 떠나고 2층에는 짐만 올려져 있다는 설정이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최대한 영화적인 과장과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 지금 첫 장면처럼 설정했다. 현실에 없을 법한, 영화적인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게 반영된 이미지다.


Q. 물소리는 어떤 것이었나.

공간 자체에 기묘한 분위기가 나기를 원했다. 후반 작업에서 만들어진 사운드다. 이질적으로 시작했으면 했고, 어느 정도는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가 '영화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정적이 있는 공간보다는 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살짝의 균열을 주는 음향과 함께 출발하고 싶었다.


Q. 종수를 알려주는 데 원룸이 큰 역할을 한다. 히치콕, 고레에다 히로카즈, <킴스비디오> 포스터 등 소품이 많이 등장한다.

안사현 미술감독에게도 과해지자고 얘기했다. 예전에 만든 단편에서 집을 사실주의로 구성하다 보니 비어 보였다. 이번에는 종수가 영화에 미쳐 있다는 걸 드러내자, 로케이션 여건상 예쁜 공간을 구할 수 없으면 미술로 인물의 광기를 표현해 보자는 쪽이었다. 가지고 있는 재료 중에서 내가 넣고 싶은 걸 추려서 넣었다.


Q. 종수는 약을 먹고 쓰러지지만, 이전 상황에서 화재경보기가 계속 울렸고, 종수의 엄마는 연기를 많이 마셨다는 말을 한다.

연결을 열심히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른 스태프들은 영화적인 전개니까 그냥 약 먹고 쓰러졌다가 일어나는 걸로 하자고 했다. 나는 ‘자살 시도를 했는데 왜 보험금을 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하나만 더 추가하자고 했다. 공간 내에 화재경보기를 계속 울리게 하고, 담배 피우는 집이 이 집밖에 없다는 대사도 넣었다. 담배 때문에 불이 났다는 뉘앙스로 최대한 가져가면서도 빠져 나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두자는 생각이었다.(웃음) 화재경보기 사운드를 넣은 것도 종수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Q. 종수는 가족 내에서 어떤 인물이었을까.

종수의 가족은 잘 살았다. 종수의 아버지가 어려움을 겪고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다. 종수는 잘 살았을 때 꿈꿨던 영화에 대한 관성이 남았다. 다른 가족들은 상황에 적응하며 현실을 택했다. 엄마는 어느 정도 봐주지만, 누나와 동생에게 눈치받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다.


Q. 혜미는 종수와 꽤 다른 면모로 등장한다.

초고에서 혜미는 접객 대행 알바였다. 우연히 함께 가는 설정이었다. 제작지원 심사를 보셨던 이란희 감독님이 여성 관객은 혜미라는 캐릭터가 종수를 위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충격을 받고 열심히 다시 썼다. 이란희 감독님이 넌지시 같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 하면 안 되냐고 했다. 작업을 하다보면 펑크가 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포인트를 잡아 원수, 견원지간처럼 출발하고 싶었다. 그래야 티격태격하면서 강릉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혜미가 겪는 어려움은 주변에서 많이 느끼고 들었던 것들이라 꼭 얘기해 보고 싶었다.


Q. 그러면 구체적으로 감독과 배우, 두 인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가져갔나.

앞서 말했듯 견원지간에 가까운 관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에 흔들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종수에게는 혜미가 그런 사람이다. 반대로 혜미는 종수가 제발 성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성공하지 않음으로써 위로받는, 올바르지 못하고 못된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다만 혜미는 좀 더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선택이 옳았다, 종수 영화 말고 돈이 되는 영화를 찍은 게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걸 합리화하는 마음이 있다. 종수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강한 열망보다는 은연중의 감정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종수는 혜미를 일차원적으로 바라보지만, 혜미는 종수가 진짜 망하면 내 선택을 떠올리며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감정선으로 갈 수 있다고. 혜미를 연기한 안태주 배우가 이러한 감정선에 대해 연기를 진짜 잘해줬다. 정말 고맙다.


Q. 차 안에서도, 해변에서도 두 인물이 마주 보기보다 정면을 바라보며 대화한다.

종수와 혜미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도, 배우도 결국 영화라는 매체를 빌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혜미는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고, 종수는 성취에 대한 자격지심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비슷한 방향성은 가지고 있고, 결국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게 될 거라는 것,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게 될 거라는 걸 암시하고 싶었다. 분명 혜미와 종수가 긍정을 받는 방법은 전혀 다를 거다. 그럼에도 둘이 같이 걸어가면서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시선이 중요했다. 한 명의 시선이 틀어져 있거나 시선의 불일치는 주되, 몸의 방향성에는 일치를 주고 싶었다. 


나란히 앉는 극장의 이미지도 많이 생각했는데 해변 장면은 정동진을 생각하며 썼다. 정동진에서의 경험이 정말 좋았다. 여자 친구와 해변에서 오늘 본 영화가 어땠는지, 내 영화가 어떤지 이야기했던 시간이 소중하고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전통적인 극장 개념에서 벗어나 종수가 위로받을 수 있는 극장의 개념이 해변으로 이어지기를 원했다. 결국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가 영화를 통해 삶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보다는, 영화가 아닌 바깥 공간에서도 서로의 교류를 통해 자기 긍정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은 마주 보기보다 극장 객석에 앉은 듯한 이미지로 가고 싶었다.


Q. 혜미는 담배를 피우지만, 종수는 불을 붙이지 못한다.

종수는 자신의 삶에서 발화하지 못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혜미는 유명 장편영화에 출연했지만, 그곳에서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마주했다. 이러한 맥락을 담배 이미지로 치환하고 싶었다. 원래 혜미 촬영에서 염두에 둔 건 석양과 담배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혜미가 꿈꿨던 태양의 이미지가 담배와 연결되면서 쭉 저물어간다는 이미지로 만들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강릉은 해가 뜨는 곳이다.(웃음) 큰일 났다 싶어서 차선책으로 만든 이미지다. 낙조와 혜미의 이미지가 겹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인물들의 헤드룸이 거의 없이 타이트하게 잡혀 있다. 카메라도 꽤 많이 움직인다. 패닝 장면이 많고, 인물을 중심에 두기보다 좌우 폭을 많이 쓴다.

종수와 혜미는 여유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영화에 여유 있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헤드룸을 적게 뒀다. 다르덴 형제처럼 찍는 장면은 신영극장 주변을 15분 동안 끊지 않고 따라가면서 찍었다. 찍을 때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박승현 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해줘서 마음에 들게 나왔다. 개인적으로 컷으로 끊는 것보다 계속 패닝 하면서 잡아주는 장면들이 좀 더 영화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Q. 라디오, 일기예보, 극장 관객의 소리, 내비게이션 등 외부의 소리가 인물들에게 계속 영향을 준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수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는데 수학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다고 하더라.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바라지 않았다. 반대로 나나 배우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평가와 무대에 서는 일에 주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언어가 많이 그리고 잘 들린다.(웃음) 

작품을 만들 때 외부 음향이 가급적 등장하지 않는 걸 선호했는데, 이번에는 인물의 길을 정해주거나 다음 방향인지를 알려주는 외부 사운드가 들어오게 했다. 끊임없이 외부 사운드를 듣는 캐릭터들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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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작지원을 받으면서 어떤 점이 도움이 됐나

사무국에서 정말 잘 기다려 주시고 이해해 주셨다. 신영극장도 빌려서 찍었다. 작업하면서 미진했던 부분이 많아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잘 기다려 주시고 베풀어 주셨다. 만드는 사람들을 잘 배려해 주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동진을 염두에 두면서 쓴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협력할 수 있어서 좋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Q. 이 작업이 개인적으로는 어땠을까.

영화를 정공법으로 배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주류로 영화를 배운 사람들과 다르게 야메로 배웠다. 한 편 한 편 찍을 때마다 시선이 트이는 경험을 한다. 그만큼 많이 실패를 겪기도 하고, 편집하거나 시나리오를 다시 보면서 스스로 반면교사 하면서 다음 작품을 생각한다.

한편으로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를 통해 영화에 대한 공포증을 극복했나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의 주제 의식과 닮아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영화는 계속 나를 괴롭게 한다. 누군가 영화를 하는 99%는 즐겁지 않다고 얘기한 인터뷰를 읽었는데 완벽하게 동의한다.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진행하면서 소수점만큼만 행복하다. 그럼에도 나를 죽일 것 같은 이 꿈과 자극이 사람들과 나를 연결되게 만든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영화에 대해 소통하면서 내가 더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앞으로도 계속 작업하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


Q. 2030영화제를 통해 비평 글도 발표했다.

뒤풀이에서 들은 말이 오래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럼에도 계속 뭔가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단편영화제를 정말 많이 다녔다. 자연스럽게 영감을 얻고, 쓰고 싶고, 만들고 싶어진다. 최근에는 정말 좋아하는 가수가 장범준과 이찬혁이다.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격지심 없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은 <살처분>과 <조금만 더 죽은 척 해줘>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살짝 멀어져 있다.(웃음) 그래서 요즘 비평 글을 쓰는 듯하다.


Q. 글 쓰는 일도 계속하고 싶은 걸까.

영화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최대한 다 해보고 싶다. 대학원에 들어가 교직 생각도 있고, 영화제 스태프와 영화 기자도 해보고 싶다. 그렇지만 그 중심에는 계속 단편을 만드는 일이 있다. 비평도 그 일환이다. 항상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만 있었던 내가 다른 사람의 영화를 비평하는 일은 또 다르다.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다양하게 생각하고 있다. 

비평을 시작한 이유에는 <살처분>에 대한 글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아무도 안 써준 것도 있다.(웃음) 사실 단편영화에 대한 비평은 많이 없다는 걸 안다. <살처분>은 프로그램 노트를 받은 적도 없다. 이번에 정동진독립영화제를 통해 프로그램 노트를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내가 내 영화에 대한 글을 받고 싶은 것만큼 다른 단편영화 감독들도 자기 영화에 대한 글을 받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욕망하던 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주고 싶다는 연장선으로 시작하게 됐다.


Q. 종수의 방에 있는 히치콕 포스터에 시네마가 삶보다 중요하다는 문구가 나온다.

나는 내 삶이 더 중요하다. 오래전부터 상업 장편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편을 오래 찍다 보니 그 경지까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구나 싶기도 하다. 박세영 감독이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고 싶다고 한 인터뷰를 봤다. 나는 반대로 단편을 계속 만들 수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싶다. 영화와 삶이 잘 공존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Q. 단편영화가 장편으로 가기 위한 단계적 성격으로만 다뤄지는 경우도 있다.

장편을 안 본 지 오래됐다. 단편을 선호한다. 인디그라운드 상영도 보고 다양한 단편을 보려고 노력한다. 단편이 장편으로 가는 과정으로 여겨지는 건 아쉽다. 미장센단편영화제 작품이 넷플릭스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걸 보며 단편도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단편이 더 많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Q.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앞두고 있다.

내 영화에 대한 확신이 큰 편은 아니다. 이번에 믹싱을 위해 안태주 배우를 만나서 이야기 나눴는데 둘 다 공포에 떨고 있다.(웃음) 옛날에는 공포를 적대시했다면 요즘에는 존재하는 걸로 인정하려고 한다. 언젠가 즐기는 날이 올 거라고 하면서 그냥 두고 있다. 내버려두는 법을 이번 영화를 만들며 많이 배웠다. 


Q. 종수에게는 영화제에 가는 일이, 혜미에게는 바르셀로나에 가는 게 버킷리스트였다. 감독님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

버킷리스트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버킷리스트가 내 삶의 목표가 되는 순간, 이뤄도 불행해지는 순간이 오더라. 종수나 혜미처럼. 

그럼에도 감독전을 해보고 싶다. 내 이야기로 감독전을 하고 이제 영화를 더 이상 안 찍는 게 일차적인 목표다.(웃음) 모순되지만, 오랫동안 단편을 찍으면서 사는 게 긴 목표다. 달성되면 끝나는 게 아니라 길게 둘 수 있도록. 내가 영화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지 않은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는 버킷리스트를 가지자는 게 이번 영화를 찍고 난 다음에 든 생각이다.



인터뷰 / 김민범

사진 / 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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