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이곳에 오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돌아 올 수밖에 없는 여기로 왜 여행을 오는지. 영영 올 수 없다면 슬프겠지만, 이렇게 고여 있긴 싫다. 더 모르겠는 건 매번 내 마음을 넘겨짚는 엄마다. 차라리 부둥켜 싸우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오늘도 엄마는 고고하게 시를 쓴다.
시인 허숙희가 운영하는 주문진 가이텍 펜션의 막내 최초코가 사라졌다. 초코의 부재로 인해 덮어 뒀던 지난 이야기가 흘러들며 균열이 발생한다. 영화를 찍고 싶은 최박하, 강릉을 떠나 서울에서 화학을 전공하는 최진하까지 세 모녀는 오랜만에 모였지만, 이들의 하루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시작점의 무거움은 멀리 두고, 경쾌함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순미경 감독. 지지고 볶는 세 모녀의 펜션 단면도를 살펴보자.

Q. 작년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올해 제외하고 작년이 역대 최대 관객 수로 알고 있다. 친구들과 와서 보는데 정말 좋았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고, 반딧불도 날아다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 받았다.
Q. 그렇다면 여름을 좋아하는 편인가?
햇볕에서 오래 살아남을 자신이 사실 없다.(웃음) 5분만 서 있어도 탈 것 같은 기분이다. 생존을 위해 항상 양산을 쓰고 다닌다.
Q. 학부 전공은 문화인류고고학이었다.
일을 일찍 시작해서 단막극이나 드라마 보조 작가를 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하다가 안 맞는다고 느꼈다. 영화 연출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때, 영화 동아리에 들어갔다. 대학교 2학년이었다. 새로 시작 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패기가 강한 동아리였다. 친구 따라 들어간 나는 의지가 강한 편이 아니었는데 점점 생겨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웃음) 당시 동아리원 중 영화 하는 사람은 나 하나 남았다. 대학원은 영화과로 진학했다. 요즘은 OTT 시리즈가 영화와 드라마 사이에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어릴 때 드라마를 했던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Q. 광주에서 영화하는 일은 어땠을까?
광주에서 영화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 서울에서 공부할 때는 졸업하면 다시 내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직 못 내려가고 있다. 지금은 광주에서 영화 하는 게 어떻게 바뀌었을지 잘 몰라서 조심스럽다. 당시에는 광주 소재 대학에 영화과도 없고, 열악한 편이었다. 아마 광주에서 공부할 곳이 있었다면 서울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Q. 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했다.
영화를 찍을 때, 먼저 염두에 두는 건 제작비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다. 일을 적당히 잘 못하는 성격이어서 최소한으로 잡아둬야 점점 커지는 규모를 감당할 수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인데 서울에서 <핸드메이크 케이크>(2024)와 <지붕 위의 질투>(2024)를 찍었는데 스태프 숙박비와 교통비가 광주에서 찍을 때처럼 들어가지 않았다. 제작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부분이 사라져서 이 비용을 미술에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입시 미술을 했다. 덕분에 미술 파트에 관심 많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작게 시작해서 점점 키워나가는 편이다. 미술을 통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편이다. 영화 스틸을 보면 작품마다 스타일이 판연히 다르다.
Q. 질문을 조금 앞당겨 보면 이번 작품에서는 미술적으로 어떤 점을 고민했나.
<초코의 가출>에서는 세 사람의 대화가 진행되는 집이라는 공간이 인물을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실은 엄마가 생활하고 관리하는 공간이다. 엄마가 널어놓은 염색 천도 있고, 시집도 있다. 엄마와 가장 가까운 초코의 물품도 거실에 놓여있다. 영화하는 박하의 방에는 영화 소품이나 잡지, 포스터로 꾸며져 있다. 진하는 서울에서 생활하는 상황이라 진하의 방으로 엄마의 물건이 조금씩 침투하는 중이다. 이번에는 공간 자체에 신경을 많이 썼다. 미술로 인물들의 당위성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Q.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제작지원을 받았다.
로케이션은 모두 강릉 인근에서 찍었다. 로케이션 헌팅만 10번 넘게 왔고, 엔딩의 몽타주 촬영도 3번 왔다. 강릉 지역 주민은 아니다 보니 강릉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찾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답사를 다니면서 젊은 관광객이 많은 도시지만, 지역 청년들은 이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광주랑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촬영은 광주에서 영화 찍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 만들었던 영화 <생태교란종>도 다시 떠오르고, 영화 만드는 고단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Q. 단편영화 제작지원에 맞춰 시나리오 수정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초고는 3년 전에 썼다. <초코의 가출>은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엄마 집에서 쫓겨났던 적이 있다. 당시 했던 대화를 노트에 적어뒀다. 영화로 쓰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이라 계속 떠올릴 바에는 적어두자고 생각했다. 이후에 대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서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로 장르를 바꾸고, 캐릭터 설정을 새롭게 만들었다. 엄마 직업을 시인으로 설정했고, 박하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3 금융권 대출 ‘햇살론’을 생각하는 것도 추가됐다. 나는 문과고, 친동생은 이과여서 대화가 안 통하는 면이 있다.(웃음) 이러한 포인트도 유머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제작지원을 받고 바뀐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면 반려견이 집을 나갔는데 세 사람이 집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게 개인적으로 계속 납득이 안 됐다. 반려견을 키웠던 입장에서 반려견이 사라졌는데 누가 태평하게 집에 있나 싶어서 많이 고민했다. 그러나 세 사람이 앉아서 대화할 장소도 분명 필요했다. 이들의 거주지를 펜션으로 설정하면 허숙희 가족의 장소이면서도 잠시 숙박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쉽고 들고 날 수 있는 특성을 생각하면 대화하기 적합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릉에 있는 펜션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Q. 영화 속 시간은 8월 21일이다. 실제 촬영은 언제 진행됐을까?
강릉 순긋 해변에서 코스모스 필 때 찍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코스모스밭으로 유명한 해변인데 막상 촬영하러 갔는데 사라졌다. 코스모스는 운명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다시 장소를 잡았다. 지금도 아쉽다. 작년 9월 말에서 10월 중순에 촬영했다.

Q. 초코의 부재로 인해 가족 간의 균열이 발생한다.
초반 초코가 등장하지 않는데 반려견을 찾아가는 세 사람의 동력이 어떻게 생길 수 있냐는 질문을 제작 단계에서 많이 들었다. 단편 작업을 여러 편 해오면서 분명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회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피드백은 받아들이고, 명확하게 주장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초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초코는 초반에 등장하지 않는다. 초코에서 다른 이야기로 나아가다가 다시 초코로 돌아오는 구조로 설정했다. 초코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 모녀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주제의 핵심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구성을 짰다.
Q. 타이틀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진하가 해변을 뛰어가면서 레몬을 떨어트리며 달려간다. 염소자리의 운세도 나레이션으로 등장한다. 어지러워질지도 모르는 하루를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영화 전반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타이틀에서 코미디 영화인 걸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사람을 타이틀 전에 소개하고 싶었다. 이후에는 이들이 초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된다는 구분 점이 되는 포인트다.
운세나 타로에 흥미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타로 유튜브부터 본다. 자기 전에는 별자리 운세를 확인한다. 염소자리여서 인상 깊은 내용은 매일 캡처해 둔다. 캡처해 뒀던 내용 중 일부를 썼다. 운세를 보면서 다음 날을 상상해 보고, 구체화해 보면 조금 편해지는 게 있다.
Q. 혹시 오늘 입은 복장도 운세를 참고했을까?
맞다.(웃음) 어제 별자리 운세를 보고 오늘 파란색 옷을 입었다.
Q. 엄마는 ‘산 무덤’을 쓴 시인이자 행동하는 사람보다는 넌지시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다. 엄마 캐릭터는 어떻게 설정해 나가셨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는데 반려견은 노댕이와 같이 살았다. 엄마가 노댕이를 살피는 걸 보면서 나와 동생을 어떻게 키웠을지 생각하게 됐다. ‘나도 저렇게 컸겠구나’ 하는 순간이 많았다. 엄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문점이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엄마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도 갖게 됐다. 양육 방식을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조율해 나가면서 지낼 수 있게 됐다. 내가 이해한 엄마의 모습에서 많이 가져왔다.
Q. 펜션 안에서 공간 제한이 있다 보니 인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전략적인 고민이 필요했을 듯하다.
넓지 않은 거실 공간에서는 인물보다는 카메라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물의 동선 혹은 시선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카메라를 배치했다. 세 사람이 대화하면서 시선을 마주칠 때도 있고, 일방적이거나 시선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카메라를 세밀하게 맞추려고 했다. 실내 장면이 어려웠어서 그런지 반대로 해변에서의 야외 촬영은 하루 만에 수월하게 끝났다.
Q. 엔딩은 몽타주로 사진을 이어 붙이듯 진행된다.
내가 실제로 집에서 쫓겨나면서 봤던 창밖 풍경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아직도 그날의 장면이 생생하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박하가 쫓겨나면서 보는 강릉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박하에게 강릉은 익숙하지만, 떠나고 싶은 장소다. 관광지와 일상의 풍경을 고루 담으려고 노력했다. 영화 이후에는 알 수 없지만, 박하는 스스로 강릉에 머무는 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사진 찍듯이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Q. 캠코더로 엄마를 찍는 장면이 끝나기 직전 등장한다. 박하가 햇살론을 받아서 찍고자 하는 영화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박하의 취미는 엄마를 찍는 거다. 어릴 때는 진하를 모델로 쓰기도 했다. 초고에는 이러한 장면이 조금 더 많았는데 편집 단계에서 빠졌다. 아마 박하는 엄마에 대한 영화를 찍지 않았을까.
Q. 커플로 등장하는 손님은 처음에 싸운 상태로 강릉에 도착했다가 펜션에서 지내며 관계가 변한다.
세 모녀의 이야기가 셋에게만 남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진짜 이야기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부분은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커플의 서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인물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변한다. 시작에서 마지막으로 나아가면서 커플의 상황도 바뀌기를 원했다. 여행에서 싸우는 일은 흔하다. 다시 화해하는 것도 흔하고. 서브 스토리로 커플이 세 모녀를 관람하게 된다.
Q. 커플이 모래에 쓴 글씨는 무엇일까?
각자 배우들이 자기 이름을 쓰고, 가운데 하트를 그렸다.
Q. 세 모녀의 캐스팅에 대해 듣고 싶다.
최박하 역의 김운교 배우, 허숙희 역의 안민영 배우는 이전 작품을 같이 한 인연이 있어 함께 하게 됐다. 최진하 역을 맡은 김리예 배우는 새로 합을 맞췄다. 진하 역 캐스팅이 가장 어려웠다. 받아 주는 역할이면서도 짧은 컷 안에서 인상이 남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캐스팅을 미루다가 강민성 미술 감독이 배우 한 명을 보여줬다. 어디서 본 거 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에서 봤던 기억이 났다. 굉장히 어린 나이에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도수코에서도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이분이다 싶어 연락을 드려 같이 하게 됐다.
Q. 최박하, 최진하, 허숙희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박하는 몇 년 전부터 쓰던 예명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단편이라 생각해서 박하라는 이름을 영화에 쓰고 싶었다. 박하에 맞춰서 진하로 지었고, 강아지가 등장하는 영화니까 허스키를 상상하며 허숙희라고 지었다. 캐릭터에게 이름 지어주는 일은 항상 재밌다.
Q. 최초코의 본명은 한강이다.
한강이는 CG 감독의 반려견이다. 여러 강아지를 초코 후보에 두고 살펴보다가 CG 감독이 자기 강아지도 귀엽다고 어필했다. 까칠한 강아지라서 주인만 좋아해서 조감독이 초코의 최애 장난감을 들고 부단히 시선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나도 한 번밖에 못 만져봤다.(웃음) 한강이가 진짜 귀엽다 보니 스태프들이 기다려줄 수 있었다.
Q. 스마트폰 벨소리 변주, 초코의 등장 씬의 사자 울음소리 등 음향 효과 전반에서 가볍고, 통통 튀는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다.
영화의 대화도 길고, 중심 이야기가 무겁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해당 효과를 사용하게 됐다.
Q. 정동진에서 처음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다.
가볍게 봐주시면 좋겠다. 주제나 이면의 이야기는 만드는 사람들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재밌게 봐주시기를 바란다. 더불어서 강아지를 키우는 부모님이랑 사는 사람들은 공감할 부분이 많지 않을까.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양육 방식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Q. 앞서서 단편은 마지막이라고 했었다.
호흡이 긴 이야기를 쓰고 있다. 무거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무겁게 다루지 않을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 이번에도 무거운 이야기지만, 코미디 방식으로 풀어낼 생각이다.
글 / 김민범
사진 / 강태욱
지긋지긋한 이곳에 오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돌아 올 수밖에 없는 여기로 왜 여행을 오는지. 영영 올 수 없다면 슬프겠지만, 이렇게 고여 있긴 싫다. 더 모르겠는 건 매번 내 마음을 넘겨짚는 엄마다. 차라리 부둥켜 싸우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오늘도 엄마는 고고하게 시를 쓴다.
시인 허숙희가 운영하는 주문진 가이텍 펜션의 막내 최초코가 사라졌다. 초코의 부재로 인해 덮어 뒀던 지난 이야기가 흘러들며 균열이 발생한다. 영화를 찍고 싶은 최박하, 강릉을 떠나 서울에서 화학을 전공하는 최진하까지 세 모녀는 오랜만에 모였지만, 이들의 하루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시작점의 무거움은 멀리 두고, 경쾌함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순미경 감독. 지지고 볶는 세 모녀의 펜션 단면도를 살펴보자.
Q. 작년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올해 제외하고 작년이 역대 최대 관객 수로 알고 있다. 친구들과 와서 보는데 정말 좋았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고, 반딧불도 날아다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 받았다.
Q. 그렇다면 여름을 좋아하는 편인가?
햇볕에서 오래 살아남을 자신이 사실 없다.(웃음) 5분만 서 있어도 탈 것 같은 기분이다. 생존을 위해 항상 양산을 쓰고 다닌다.
Q. 학부 전공은 문화인류고고학이었다.
일을 일찍 시작해서 단막극이나 드라마 보조 작가를 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하다가 안 맞는다고 느꼈다. 영화 연출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때, 영화 동아리에 들어갔다. 대학교 2학년이었다. 새로 시작 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패기가 강한 동아리였다. 친구 따라 들어간 나는 의지가 강한 편이 아니었는데 점점 생겨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웃음) 당시 동아리원 중 영화 하는 사람은 나 하나 남았다. 대학원은 영화과로 진학했다. 요즘은 OTT 시리즈가 영화와 드라마 사이에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어릴 때 드라마를 했던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Q. 광주에서 영화하는 일은 어땠을까?
광주에서 영화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 서울에서 공부할 때는 졸업하면 다시 내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직 못 내려가고 있다. 지금은 광주에서 영화 하는 게 어떻게 바뀌었을지 잘 몰라서 조심스럽다. 당시에는 광주 소재 대학에 영화과도 없고, 열악한 편이었다. 아마 광주에서 공부할 곳이 있었다면 서울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Q. 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했다.
영화를 찍을 때, 먼저 염두에 두는 건 제작비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다. 일을 적당히 잘 못하는 성격이어서 최소한으로 잡아둬야 점점 커지는 규모를 감당할 수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인데 서울에서 <핸드메이크 케이크>(2024)와 <지붕 위의 질투>(2024)를 찍었는데 스태프 숙박비와 교통비가 광주에서 찍을 때처럼 들어가지 않았다. 제작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부분이 사라져서 이 비용을 미술에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입시 미술을 했다. 덕분에 미술 파트에 관심 많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작게 시작해서 점점 키워나가는 편이다. 미술을 통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편이다. 영화 스틸을 보면 작품마다 스타일이 판연히 다르다.
Q. 질문을 조금 앞당겨 보면 이번 작품에서는 미술적으로 어떤 점을 고민했나.
<초코의 가출>에서는 세 사람의 대화가 진행되는 집이라는 공간이 인물을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실은 엄마가 생활하고 관리하는 공간이다. 엄마가 널어놓은 염색 천도 있고, 시집도 있다. 엄마와 가장 가까운 초코의 물품도 거실에 놓여있다. 영화하는 박하의 방에는 영화 소품이나 잡지, 포스터로 꾸며져 있다. 진하는 서울에서 생활하는 상황이라 진하의 방으로 엄마의 물건이 조금씩 침투하는 중이다. 이번에는 공간 자체에 신경을 많이 썼다. 미술로 인물들의 당위성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Q.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제작지원을 받았다.
로케이션은 모두 강릉 인근에서 찍었다. 로케이션 헌팅만 10번 넘게 왔고, 엔딩의 몽타주 촬영도 3번 왔다. 강릉 지역 주민은 아니다 보니 강릉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찾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답사를 다니면서 젊은 관광객이 많은 도시지만, 지역 청년들은 이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광주랑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촬영은 광주에서 영화 찍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 만들었던 영화 <생태교란종>도 다시 떠오르고, 영화 만드는 고단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Q. 단편영화 제작지원에 맞춰 시나리오 수정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초고는 3년 전에 썼다. <초코의 가출>은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엄마 집에서 쫓겨났던 적이 있다. 당시 했던 대화를 노트에 적어뒀다. 영화로 쓰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이라 계속 떠올릴 바에는 적어두자고 생각했다. 이후에 대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서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로 장르를 바꾸고, 캐릭터 설정을 새롭게 만들었다. 엄마 직업을 시인으로 설정했고, 박하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3 금융권 대출 ‘햇살론’을 생각하는 것도 추가됐다. 나는 문과고, 친동생은 이과여서 대화가 안 통하는 면이 있다.(웃음) 이러한 포인트도 유머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제작지원을 받고 바뀐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면 반려견이 집을 나갔는데 세 사람이 집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게 개인적으로 계속 납득이 안 됐다. 반려견을 키웠던 입장에서 반려견이 사라졌는데 누가 태평하게 집에 있나 싶어서 많이 고민했다. 그러나 세 사람이 앉아서 대화할 장소도 분명 필요했다. 이들의 거주지를 펜션으로 설정하면 허숙희 가족의 장소이면서도 잠시 숙박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쉽고 들고 날 수 있는 특성을 생각하면 대화하기 적합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릉에 있는 펜션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Q. 영화 속 시간은 8월 21일이다. 실제 촬영은 언제 진행됐을까?
강릉 순긋 해변에서 코스모스 필 때 찍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코스모스밭으로 유명한 해변인데 막상 촬영하러 갔는데 사라졌다. 코스모스는 운명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다시 장소를 잡았다. 지금도 아쉽다. 작년 9월 말에서 10월 중순에 촬영했다.
Q. 초코의 부재로 인해 가족 간의 균열이 발생한다.
초반 초코가 등장하지 않는데 반려견을 찾아가는 세 사람의 동력이 어떻게 생길 수 있냐는 질문을 제작 단계에서 많이 들었다. 단편 작업을 여러 편 해오면서 분명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회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피드백은 받아들이고, 명확하게 주장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초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초코는 초반에 등장하지 않는다. 초코에서 다른 이야기로 나아가다가 다시 초코로 돌아오는 구조로 설정했다. 초코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 모녀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주제의 핵심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구성을 짰다.
Q. 타이틀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진하가 해변을 뛰어가면서 레몬을 떨어트리며 달려간다. 염소자리의 운세도 나레이션으로 등장한다. 어지러워질지도 모르는 하루를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영화 전반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타이틀에서 코미디 영화인 걸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사람을 타이틀 전에 소개하고 싶었다. 이후에는 이들이 초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된다는 구분 점이 되는 포인트다.
운세나 타로에 흥미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타로 유튜브부터 본다. 자기 전에는 별자리 운세를 확인한다. 염소자리여서 인상 깊은 내용은 매일 캡처해 둔다. 캡처해 뒀던 내용 중 일부를 썼다. 운세를 보면서 다음 날을 상상해 보고, 구체화해 보면 조금 편해지는 게 있다.
Q. 혹시 오늘 입은 복장도 운세를 참고했을까?
맞다.(웃음) 어제 별자리 운세를 보고 오늘 파란색 옷을 입었다.
Q. 엄마는 ‘산 무덤’을 쓴 시인이자 행동하는 사람보다는 넌지시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다. 엄마 캐릭터는 어떻게 설정해 나가셨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는데 반려견은 노댕이와 같이 살았다. 엄마가 노댕이를 살피는 걸 보면서 나와 동생을 어떻게 키웠을지 생각하게 됐다. ‘나도 저렇게 컸겠구나’ 하는 순간이 많았다. 엄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문점이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엄마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도 갖게 됐다. 양육 방식을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조율해 나가면서 지낼 수 있게 됐다. 내가 이해한 엄마의 모습에서 많이 가져왔다.
Q. 펜션 안에서 공간 제한이 있다 보니 인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전략적인 고민이 필요했을 듯하다.
넓지 않은 거실 공간에서는 인물보다는 카메라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물의 동선 혹은 시선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카메라를 배치했다. 세 사람이 대화하면서 시선을 마주칠 때도 있고, 일방적이거나 시선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카메라를 세밀하게 맞추려고 했다. 실내 장면이 어려웠어서 그런지 반대로 해변에서의 야외 촬영은 하루 만에 수월하게 끝났다.
Q. 엔딩은 몽타주로 사진을 이어 붙이듯 진행된다.
내가 실제로 집에서 쫓겨나면서 봤던 창밖 풍경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아직도 그날의 장면이 생생하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박하가 쫓겨나면서 보는 강릉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박하에게 강릉은 익숙하지만, 떠나고 싶은 장소다. 관광지와 일상의 풍경을 고루 담으려고 노력했다. 영화 이후에는 알 수 없지만, 박하는 스스로 강릉에 머무는 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사진 찍듯이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Q. 캠코더로 엄마를 찍는 장면이 끝나기 직전 등장한다. 박하가 햇살론을 받아서 찍고자 하는 영화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박하의 취미는 엄마를 찍는 거다. 어릴 때는 진하를 모델로 쓰기도 했다. 초고에는 이러한 장면이 조금 더 많았는데 편집 단계에서 빠졌다. 아마 박하는 엄마에 대한 영화를 찍지 않았을까.
Q. 커플로 등장하는 손님은 처음에 싸운 상태로 강릉에 도착했다가 펜션에서 지내며 관계가 변한다.
세 모녀의 이야기가 셋에게만 남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진짜 이야기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부분은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커플의 서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인물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변한다. 시작에서 마지막으로 나아가면서 커플의 상황도 바뀌기를 원했다. 여행에서 싸우는 일은 흔하다. 다시 화해하는 것도 흔하고. 서브 스토리로 커플이 세 모녀를 관람하게 된다.
Q. 커플이 모래에 쓴 글씨는 무엇일까?
각자 배우들이 자기 이름을 쓰고, 가운데 하트를 그렸다.
최박하 역의 김운교 배우, 허숙희 역의 안민영 배우는 이전 작품을 같이 한 인연이 있어 함께 하게 됐다. 최진하 역을 맡은 김리예 배우는 새로 합을 맞췄다. 진하 역 캐스팅이 가장 어려웠다. 받아 주는 역할이면서도 짧은 컷 안에서 인상이 남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캐스팅을 미루다가 강민성 미술 감독이 배우 한 명을 보여줬다. 어디서 본 거 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에서 봤던 기억이 났다. 굉장히 어린 나이에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도수코에서도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이분이다 싶어 연락을 드려 같이 하게 됐다.
Q. 최박하, 최진하, 허숙희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박하는 몇 년 전부터 쓰던 예명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단편이라 생각해서 박하라는 이름을 영화에 쓰고 싶었다. 박하에 맞춰서 진하로 지었고, 강아지가 등장하는 영화니까 허스키를 상상하며 허숙희라고 지었다. 캐릭터에게 이름 지어주는 일은 항상 재밌다.
Q. 최초코의 본명은 한강이다.
한강이는 CG 감독의 반려견이다. 여러 강아지를 초코 후보에 두고 살펴보다가 CG 감독이 자기 강아지도 귀엽다고 어필했다. 까칠한 강아지라서 주인만 좋아해서 조감독이 초코의 최애 장난감을 들고 부단히 시선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나도 한 번밖에 못 만져봤다.(웃음) 한강이가 진짜 귀엽다 보니 스태프들이 기다려줄 수 있었다.
Q. 스마트폰 벨소리 변주, 초코의 등장 씬의 사자 울음소리 등 음향 효과 전반에서 가볍고, 통통 튀는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다.
영화의 대화도 길고, 중심 이야기가 무겁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해당 효과를 사용하게 됐다.
Q. 정동진에서 처음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다.
가볍게 봐주시면 좋겠다. 주제나 이면의 이야기는 만드는 사람들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재밌게 봐주시기를 바란다. 더불어서 강아지를 키우는 부모님이랑 사는 사람들은 공감할 부분이 많지 않을까.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양육 방식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Q. 앞서서 단편은 마지막이라고 했었다.
호흡이 긴 이야기를 쓰고 있다. 무거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무겁게 다루지 않을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 이번에도 무거운 이야기지만, 코미디 방식으로 풀어낼 생각이다.
글 / 김민범
사진 / 강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