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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JIFF22_이별이라는 자연재해에 대처하기 위한 사랑의 댐 쌓기_<나와 승자> 김아영 감독 인터뷰2020-08-1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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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수많은 형태와 크기의 가족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돌보고 살리는 집이 있으면 명절에 모이면 신발장이 어지럽혀지는 대가족도 있을 것이고, 식구들과 모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으면 간신히 같은 지붕 아래 머무를 뿐인 가족도 있을 것이다. <나와 승자>는 세 자매와 엄마를 중심에 두지만, 신기하게도 그 모든 가족을 상상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다. 제22회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소개되는 작품, <나와 승자>의 김아영 감독을 만났다. 


 


 

Q. <나와 승자>라는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엄마를 떠나 살게 됐다. 밤마다 자꾸 엄마의 부재를 느끼고 잠에서 깼다. 덜컥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그게 일주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이게 건강한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와 잘 이별하는 법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방법으로 '기록하기'를 떠올렸다. 처음엔 독립출판물 <나와 승자>를 펴냈고, 같은 제목으로 이렇게 애니메이션까지 만들게 됐다.

 

Q. 극중 아영은 서른일곱이 아니라 예순 살로 등장한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엄마께 효도를 너무 못한 것 같더라. 예순쯤 되면 많은 걸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나이를 60으로 설정해 봤다. 여기에 맞춰서 실제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미래에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도 내용에 포함했다. 여행 가는 장면. 엄마가 91세 되시기 전엔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넣었다. 

 

Q. 예순인 상태로 있던 아영이 스르륵 서른 일곱살이 되어 '이별을 맞이할 준비'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회상 씬처럼 표현해 봤다. '아주 친밀한 세 자매가 할머니가 되어서 차를 함께 마신다, 동생이 '언니, 이제 두렵지 않아?' 묻는다, 예순이 된 '나'는 더이상 두렵지 않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하고, 서른일곱의 아영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자매가 차를 마시던 테이블을 그대로 살려서 티 테이블이 상담 테이블이 되도록 표현했다. 채색을 하지 않다 보니 이 사람이 젊어진 건가 늙은 건가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나이 든 얼굴엔 나름 주름살도 두 개씩 그렸는데!(웃음)

 

Q. 출판물로 처음 펴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두 작업의 차이는 무엇이었는지도 듣고 싶다.
종이책을 만들면서, 인물들의 움직임을 보고 싶어졌다. 애니메이션에선 캐릭터가 눈 한번만 깜박해도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지 않나. 내가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픈 욕망이 생겼다. 걸을 때 걸음걸이는 어떨까? 뛰면 머리카락이 흩날리겠지? 말을 할 때 목소리는 어떨까? 생각하면서. 책은 좀 더 자유로운 면이 있다. 애니메이션은 어쨌거나 스크린이라는 프레임 안에 고정되어 있는데, 책은 확대할 수도 축소할 수도 있고 마음대로 모양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편한 시작점이 되어 주었다. 


 


 

Q. 연필선 중심의 간결한 작화에 목소리가 풍성하게 입혀져 있다. 실제 가족 분들이 더빙에 참여한 것으로 안다.
맞다. 처음에는 전문 성우를 섭외하려 했는데, 캐릭터들이 실존인물이고 나와 워낙 친밀하다 보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목소리를 찾기 어려웠다. 다른 식구들은 본인 역할을 하고, 아영과 엄마 역만 전문 성우를 섭외했다. 엄마는 엄마 친구 역할로 목소리 출연을 하셨다. '너희 딸들 덕분에 우리가 유럽 여행을 간다'고 말하는 친구 목소리. 나는 내레이션을 맡았다. 매부가 녹음 작업을 해서 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동생이 PD를 하고… 어쩌다 보니 가족 작업이 됐다. 

 

Q. 가족 분들께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전했을지 궁금하다.
처음엔 이러이러한 작업을 하겠다고 언니와 동생에게만 말을 하고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나와 승자> 1권을 서점에 입고할 때쯤이 되니까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단 생각이 들어서, 책을 보여드렸다. 엄마는 여전히 당신 감정을 솔직히 말씀하시지 못하는 편이라 '좋아' 한 마디만 하셨다. 아빠는 '슬프네'라고 하시고. 그러고 나서 2권이 나왔는데, 그건 아직 보여드리기가 어렵더라. 주된 내용이 내가 감정을 찾아가는 건데, 부모님 입장에선 혹여 죄책감 같은 걸 느끼시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언니와 동생은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한 것을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해 주었다.

 

Q. 시놉시스에서부터 아영이 '둘째 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세 자매 중 둘째 딸이라는 게 김아영 감독에게 어떤 의미인지, 작품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가 궁금하다.
심리학적으로, 둘째 딸이 엄마와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글을 읽었다. 내가 엄마에게 많이 집착하고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게 그래서일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보면 둘째 딸들이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전에는 둘째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분석을 보면 그런 게 어딨냐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패턴을 연구한 건데 내가 의미 없다고 치부하는 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실제로 둘째에 대한 심리학 저술을 찾아보면서 공감한 부분도 많다. 한편으론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편지에 항상 '우리 둘째 딸' '둘째 딸 아영이'라고 적어 주시곤 해서, '둘째 딸'이라는 표현에 대한 애착도 있었던 것 같다.

 

Q. 여행을 보내드리는 장면은 버킷리스트를 표현한 거라고 했다. 영화에 실화와 픽션이 어떻게 섞여 있는지 궁금하다.
비행기가 아주 가까이 지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비슷한 꿈을 꾸고 이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꼭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넣게 됐다. 그리고 '아빠는 청개구리지만 엄마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는 구절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내 바람을 담은 거다. '아빠도 그때쯤은 엄마 말 듣겠지'하고. 아직은 더 노력해야 한다. 어제도 엄마가 김밥을 사오라고 했는데 빵을 사온 우리 아빠.(웃음) 

 

Q.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어느 부분일까.
두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엄마와 세 자매의 뜨개질 장면이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집 안에서 평화롭게, 각자의 식구를 위해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 좋다. 두 번째는 화장실에서 엄마 엉덩이를 훔쳐보는 세 자매와 고양이 두 마리. 워낙 마음에 드는 장면이기도 하고, 캐릭터가 많이 나와서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 




 

Q. 채색을 하거나 매끈한 그래픽을 사용하는 대신 종이에 연필로 그린 듯한 스타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연필이란 재료를 좋아하기도 하고, 채색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채색을 해봤는데 왠지 그림이 불편했다. 왤까 생각해 보니까, 가족 이야기를 위해선 덜어내는 태도가 필요한데 채색화는 더는 게 아니라 더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진솔한 이야기인 만큼 담백하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의 스타일을 선택했다. 너무 사실적으로 외모를 묘사하기보다는 귀엽고 밝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림체도 간단하고 귀엽게 했다.  

 

Q. 정동진독립영화제가 <나와 승자>의 첫 영화제다. 소감이 궁금하다.
<나와 승자>를 올해 2월 완성했다. 상반기를 보내고 8월이 되어 정동진독립영화제 상영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엄마께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됐다고 하니까 다들 부러워하더라. 첫날 영화를 관람하며 보니, 운동장에 커다란 스크린이 펼쳐져 있고 옆으론 기차가 지나가는 게 정말 멋졌다. 탁 트인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보면서 웃길 땐 같이 웃고 슬플 땐 같이 우는 분위기도 좋았다. 

 

Q. 영화 말미에 아버지로부터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와 있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결말과 무관하게 딱 그 장면이 너무 불안했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집에서 전화가 오면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똑같다. 나도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그렇다. 결혼하기 전엔 친정에서 고양이 일곱 마리를 키웠는데 결혼할 무렵엔 다섯 마리가 됐고 지금은 두 마리만 남았다. 세 마리가 고양이별로 간 소식을 집에서 전화로 들었다. 엄마가 전화를 해서 '아영아, 해적이가 죽었어'했던 게 생생하다. 비슷하게 아빠한테 저녁 늦게 전화가 오면, '이 시간에 전화할 분이 아닌데 왜지?'싶어 긴장되고 불안하다.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Q. <나와 승자>는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다룬 <나와 재일>을 예고하며 끝난다.  
가족 이야기를 시리즈로 만들고 싶다. 아빠에 대해선 어릴 때부터 단 한 가지 감정만을 느꼈다. '분노'. 커가면서는 연민도 생겼지만, 어릴 땐 아빠와 감정의 교류도 잘 안 되고 아빠가 술을 좋아해서 생기는 일들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영화 <대부>가 '가장'을 은유한 이야기라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희생해야 한다'가 주제라는 거다. 그때 좀 충격을 받았다. 아빠의 생활이라는 게 마피아에 비견할 정도인가? 그래서 우리 아빠가 집에 오면 항상 어두운 표정으로 술을 찾았던 걸까? 영화 속 대부는 승리하지만, 주위 적들은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지 않나. 어쩌면 우리 아빠가 그렇게 성공하지 못한 마피아 캐릭터는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이런 생각들을 담아서, 아빠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다.

 

Q.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자매들을 비롯한 다른 식구들 이야기도 가능할 것 같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다른 식구들 이야기도 하려고 한다. 언니와 나를 다룬 <나와 지영>, 동생과 나를 다룬 <나와 다영>, 남편도 빼놓을 수 없으니 <나와 재수>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보니까 시부모님처럼 나의 고정관념이 투영되는 존재가 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미디어에서 보는 부정적 이미지가 영향을 미치는 거다. 그걸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고, 시어머니와 나를 다룬 <나와 선자>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영화를 보기 전엔 <나와 승자>라는 제목이 나와 '승리자'라는 뜻인 줄 알았다. 
난 엄마 이름이 익숙하니까 그런 생각을 못 했는데, 안그래도 어떤 분이 승자가 승리자라는 뜻이냐고 물으시더라. 애니메이션 안에 '엄마 성공했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게 '승자'라는 이름과 연결될 수 있겠구나 뒤늦게 생각했다. 아빠 성함은 '재일'인데, '아빠 최고야, 제일이야!'하는 표현을 넣어 이중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 이름은 재수인데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웃음)

 

Q.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와 승자>를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정말 궁금하다. 돌이켜 봤을 때, 내가 날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은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아주 근본적인 기획의도는 어쩌면 '자기 감정을 사랑하라'일지도 모르겠다. 부정적인 감정마저 사랑하는 용기를 가지면, 이별의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마음이 관객 분들께도 전달된다면 참 좋겠다. 
 

 

인터뷰 / 김송요
사진 / 송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