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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JIFF22_개막식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 다시 모여, 제22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2020-08-0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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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7일, 제22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사흘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올해 영화제 개막까지 유난히 어려움이 많았다. 연초 액땜일 거라 생각했던 코로나19가 세계를 흉흉하게 흔들고, 오래도록 세력을 흩지 않는 장마가 질척거렸다. 이에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유례없는 온·오프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450개의 좌석을 마련했다. 특수한 상황이기에 유료 예약을 진행했지만, 예매 관객에게는 매일 다른 배지를 제공한다. 폭우·강풍 등으로 인해 기술적으로 상영이 불가능하지 않다면 우천 상황이더라도 일회용 우비를 관객들에게 제공하여 상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개막 시작 한 시간 전, 흩뿌리던 장맛비가 거짓말처럼 멈추고, 먼 쪽에서는 구름을 해치고 햇발이 비쳐왔다. 모기를 쫓는 쑥불이 피어나는 어스름에 험난한 예매를 뚫은 관객들이 정동초등학교로 모여들었다. 입구에서 체온 측정과 입장 확인을 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예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북적였다. 처음 온 관객들은 초등학교 분위기를 살피고, 오랜 관객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독립영화의 여름 휴가를 반겼다. 예전처럼 초등학교 어귀에 자유롭게 모여 앉아 영화를 보고, 음식을 나눌 수는 없지만, 평소보다 많이 배치된 좌석에서 오랜만에 함께 영화 보는 시간을 기다렸다.

 

 

22회를 맞이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사회는 올해로 삼 년째, 개막식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희 배우와 단편 <뒤로 걷기>로 상영작 출연 배우이자 첫 개막 사회를 맡은 우지현 배우가 진행했다. 두 사회자는 코로나라는 커다란 사태 앞에서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며 성년이 넘은 영화제가 잘 자라주어 기특하고, 무사히 개최되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개막 축하 공연은 경기민요를 기반으로 하는 파격적인 소리꾼 ‘이희문’, 조선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소리꾼 ‘놈놈’ 그리고 재즈를 축으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는 프렐류드(Prelude)가 컬레보레이션한 ‘한국남가’가 맡았다. 이들은 듣는 음악에서 스토리텔링과 퍼포먼스를 더해 보는 음악으로 영역을 확장해내고 있다. 이들은 <제비가>, <강원도 아리랑>, <휘모리 잡가>, <신봉사 덕담>, <청춘가>, <뱃노래>까지  총 여섯 곡을 선보이며 영화제 시작의 흥을 돋았다.

 

 

강릉씨네마떼끄의 권정삼 대표의 개막 선언이 이어졌고, 정용준 감독이 만든 트레일러가 상영되었다. 사회자 우지현 배우는 트레일러의 캐릭터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귀엽기도 하지만, 이전처럼 자유롭게 앉아 영화를 보고, 오후에는 해수욕을 한 뒤 수박을 함께 나눠 먹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장·단편 합쳐 총 1,025편의 작품이 공모되어 역대 최고 출품 편수를 갱신했다.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까지 각기 다른 형식의 작품들 중 두 편의 장편과 스물한 편의 단편이 선정되어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올해는 단편 중 아홉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의 경향을 살펴볼 기회가 될 예정이다. 선정된 영화들은 청년 세대의 불안,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각자의 삐쭉한 시선,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고민 등 다종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울컥거리는 여름밤, 가장 먼저 관객을 만난 영화들은 네 편의 단편이었다. 대학 입학을 앞둔 시헌에게 문득 일본인 료타가 찾아와 죽은 엄마의 패물 찾자고 제안한다.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시헌의 친구, 예진이 합류하며 인천 일대를 보물찾기 하듯 종횡무진하는 극영화 <뒤로 걷기>, 적적한 엄마를 위로하고자 딸이 선물한 강아지 멍순이가 엄마의 일상에 스며드는 모습을 그려낸 애니메이션 <함께 살개>, 취업준비생 종석이 이사한 집에 모종의 사건으로 함께 살게 된 어린 남매, 순탄하지 않을 이들의 동거가 만들어내는 사건을 담은 극영화 <우리집>, 광막한 사막을 걷는 할아버지와 손자, 이들의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목적과 길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을 포착한 애니메이션 <스네일 맨>이 상영됐다. 상영 후 이어진 대담에서 배우와 감독들은 함께 영화 보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는 공통적인 소감을 밝히며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이어서 상영된 작품은 게임 회사가 운영을 방치해서 업데이트가 끊기고, 불법 매크로와 핵이 판치는 게임 ‘일랜시아’에 남아있는 2030세대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왜 게임을 떠나지 못하는지 질문하는 장편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상영되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 이후에도 더 극적인 일들이 생겨서 확장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며 아직 극장 개봉은 쉽지 않아보지만, 완성되면 소규모 상영을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오늘 관객을 만난 다섯 작품에 대한 땡그랑 동전상은 내일 첫 상영 전 발표된다.

 

 

수상한 시절 덕에 축소된 규모와 평소와 다른 절차와 함께 스물두 번째 정동진독립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비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했지만,상영 막바지에는 박광수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구름이 찢긴 자리에 별과 달이 떴다. 정동초등학교에 뜬 별과 달은 오늘의 낭만을 선사했고, 내일의 무탈함을 약속하는 듯했다. 곳곳에서 ‘이후’와 ‘다음’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곳에서 모여 우리는 나란히 스크린을 응시하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일에 대해 말하는 일은 여러모로 곤란하지만, 낯설어서 익숙한 영화를 함께 본 오늘의 기쁨은 밤새 말할 수 있기에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의 정동진독립영화제 첫 날은 쉽게 저물지 못한다.

 

정리 / 김민범

사진 / 송기영